[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평가절하된 호칭 ‘너’
입력 2012-09-07 18:02
나는 세 살배기 딸만큼이나 놀이터를 좋아한다. 그곳은 나에게도 쉼터요, 그곳에서 피어나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내가 잊고 있었던 기쁨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딸아이가 사당동의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때 초등학교 5∼6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 어린이가 그네를 타러 왔다. 내 딸은 함께 놀고 싶은 생각에 한참 동안 그 언니를 바라보다가 용기를 내어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너 몇 살이니?’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그 어린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내 딸아이를 쳐다보다가 냉정하게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몰라도 돼.” 이 대답에 머쓱해진 딸아이는 머뭇거리다가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뒤돌아서야 했다.
너는 몇 살이니?
몬트리올 대학의 초청 연구원으로 가 있는 동안에도 놀이터 나들이는 주로 나의 몫이었다. 딸아이가 모래밭에서 놀고 있노라면 금방 서너 명의 친구들이 생기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공원에서 내 딸과 친구가 된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너 이름이 뭐니?(What’s your name?)” 하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난 성현이야(My name is Sung Hyun)”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너 몇 살이니?(How old are you?)” 하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사실 좀 당황스러운 질문이었지만, 한편으로 귀엽기도 해서 “난 45살이야(I’m forty five years)”라고 순순히 내 나이를 말해 주었다. 그 아이는 “난 다섯 살이야(I’m five years old)”라고 태연하게 자기 나이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같이 놀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지 홱 돌아서서 다시금 친구들 쪽으로 향했다.
수직적 관계의 호칭
아직 우리말의 ‘너’라는 뉘앙스를 잘 모르는 막내와는 달리 둘째 녀석은 ‘너’라는 단어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작년 여름 몬트리올에 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 한인교회에 잠시 출석한 적이 있었다. 캐나다 퀘벡주의 몬트리올시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이중 언어 지역이다. 그곳의 한인 어린이들은 우리말은 물론 프랑스어와 영어를 섞어서 쓰는 경우가 잦다. 주일 예배를 마친 다음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녀석이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터벅터벅 다가와서는 내게 울분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자기보다 한두 살 어린 아이들이 자기를 ‘형’이라고 부르지 않고 ‘너’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자기를 ‘형’이라고 불러야지 ‘너’라고 부르는 것은 자기를 무시하는 것이라나. 아들의 말에 나는, 네가 73살이 되고 그 아이들이 71살 혹은 72살이 된다면 그때에도 네가 형이고 그 할아버지들이 동생이 되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자신의 억울함에 조금도 동조하지 않는 내 앞에서 아들은 ‘놀리지 마, 아빠’라고 고개를 떨구며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때마침 그 교회 담임목사가 이 장면을 보고 자초지종을 들은 후 동생들을 단단히 교육시키겠다고 위로하면서 내 아들의 손을 잡고 함께 가는 것이었다. 우리말의 어법은 언제부턴지는 모르지만 사람 사이의 호칭을 관계 중심으로 파악하여 호형호제를 전제하고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 세계에서조차 관계가 잘 성립되지 않는다.
세계의 여러 언어 중에서 우리말의 ‘너’처럼 홀대받고 평가절하된 단어가 또 있을까. 우리말에서 ‘너’라는 단어는 친구 사이를 제외한다면 상하, 주종, 종속 관계 등 주로 수직적인 관계에서 사용된다. 인간의 평등이란 보편가치가 아니라 차별 혹은 지배를 세뇌시키고 있는 단어인 것이다. 모르긴 해도 ‘너’라는 단어의 왜곡된 인간 차별적 개념은 조선 시대의 군사부일체라는 가부장적 지배 이데올로기 속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공자의 제자 아니다
하지만 기독교적 전통은 ‘너’라는 단어를 이토록 망가트린 가부장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 기독교인들은 신분, 나이,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시작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였고 서로를 ‘형제’요 ‘자매’로 대하였다(갈 3:28). 신약성경에는 ‘형’이니 ‘언니’니 하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지만, 서로를 ‘형제’요 ‘자매’로 부르는 경우는 무수하지 않은가(약 2:1). 특히 사막의 구도자들에게 있어서 평등 개념은 기독교적 삶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예수 안에 살아가려는 자들의 모임은 본래 ‘형제들의 모임’(혹은 ‘형제단’)이라고 불렸다.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의미에서 ‘형제들의 모임’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 모임은 본질적으로 정신혁명적인 것이었으니, 물건으로서 사고 팔리던 노예이건 혹은 신적인 존재로 숭배되던 황실인물이건 간에, 그 누구든 관계없이 ‘형제들의 모임’에서는 질적 차이가 전혀 없는 하나님 앞의 동등한 존재였던 것이다(고전 1:29). 오늘날 서양언어에서처럼 나를 낳아준 아버지를 우리말로 ‘너’라고 부를 수 세상을 기대해 본다면, 나는 이런 유교적 사회의 ‘이단아’가 될 것인가. 그러나 나는 사랑으로서의 효는 그 사랑 때문에 받아들이지만,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효는 그 비인간적 차별 때문에 거부한다. 나를 누가 어떻게 보든 나는 공자의 제자가 아니며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자랑할 것이다(고전 1:30∼31).
<한영신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