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 칼럼] 영적 감옥의 죄수와 간수가 되어!

입력 2012-09-07 17:29


며칠 전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의 대하소설로 우리시대를 깨웠던 조정래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큰 감동을 받은 바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얼마나 철저한 구도자적 작가정신으로 글을 쓰고 있는가를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작가가 지쳐 있거나 무관심한 영혼들을 흔들어 깨우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의 평균 노동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의 집필 현장을 ‘황홀한 글 감옥’이라 부른다. 이 감옥에서 그는 수인이면서 간수이기도 하다. 자기 규율과 제어의 감옥에서 글이 잘 안될 때 몸부림치다시피 해서 스스로를 이겨내 쓰다 보면 생각보다 좋은 글이 탄생한다.

필자는 이 대담 기사를 접하면서 복음 사역자로 부름 받은 필자의 현존을 직시하며 진리의 구도자로 영적 감옥의 죄수와 간수가 되지 않고는 결코 지친 영혼들을 깨울 수 없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막스 베버가 ‘세계내적 금욕(die innerweltliche Askese)’이라 명명했던 기독교 영성의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세계내적 금욕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설명하자면 죄 많은 세계 안에 살면서 근면, 절제, 기도, 노동으로 대표되는 순결하고 치열한 수도사적인 삶의 실천을 통해 세상에 가치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가는 삶의 양식을 말한다. 세계내적 금욕은 기도와 노동을 통해 새 가치를 창조했고 세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중세 수도원의 타락, 세속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수도원으로 갔던 수도사들이 수도원의 물질적 풍요와 세속화로 타락하게 됨으로 그들의 출가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이 새롭게 발견한 복음의 능력에 의하여 새롭게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죄 많은 세상 안에 살아가면서 그들의 믿음을 실천하고 진리의 영성을 보전하도록 도전을 받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믿음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구별된 수도원에서 믿음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보다 더 치열한 영적 투쟁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본래 수도원의 삶의 가치로 자리잡았던 근면, 절제, 기도, 노동의 윤리를 그들의 현실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복음 안에서 거듭난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타락한 사회가 경건한 청교도 문화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본이 축적되고 산업이 발전됨으로 중세 봉건사회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근대 시민사회가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계내적 금욕의 윤리를 실천했던 칼빈주의의 그리스도인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시민자본주의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였고 그 후에 전개된 시민민주주의 사회의 주역들로 역할을 하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성장한 자본주의가 후에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정글자본주의로 발전함에 따라 칼빈주의가 자본주의의 비조(鼻祖)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새롭게 발견된 복음이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가져왔고 새로운 인간들이 새로운 문명의 창조자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다.

이러한 창조적인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기독교가 새로운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자명하다. 죄와 불의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 가운데서 세계내적 금욕의 삶으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던 자랑스러운 새 역사 창조의 유산을 이어가야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오늘의 교회가 타락하고 세속화되었던 중세 수도원과 같은 자리로 떨어지지 않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그리스도 교회는 중세 당시의 비극을 반복하는 현실에 처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뼈를 깎는 자기갱신과 변화 과정을 겪지 않고는 다른 주자에게 자리를 넘겨줄 수밖에 없는 절박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시대를 변화시키는 영적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부름을 받고 있는 사역자들은 날마다 세계내적 금욕의 영성을 위해 용기를 내어 영적 감옥의 수인과 간수가 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세상속의 수도자들이 되도록 부르는 이 시대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김원배 목포예원교회 목사·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상임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