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도 특허전쟁… IT·통신업계 가세에 불뿜어
입력 2012-09-06 18:59
외환은행은 지난해 10월 A지방은행이 출시한 상품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A은행의 신규 상품과 외환은행이 2006년 8월 특허를 딴 ‘외국인근로자송금’ 상품이 완전히 같았기 때문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급여 중 일부를 곧바로 해외로 보내주는 이 서비스로 인기몰이를 하던 외환은행은 특허를 도용당했다는 생각에 소송까지 생각했지만 비용, 시간 등을 고려하다 포기하고 말았다.
2005년 국내 IT기업인 B사는 국내 시중은행들에 한 장의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은행이 현재 사용 중인 ‘투채널인증’(인터넷 금융거래 시 개인용 컴퓨터로 로그인을 해도 휴대전화나 신용카드 등 다른 수단으로 본인 확인을 하는 이중 인증절차) 방식에 대해 특허권을 제한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각 은행은 비상이 걸렸다. 여차하면 보안시스템 자체를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둘러 B사와 협상을 벌인 은행들은 오랫동안 이용한 기술이라는 점을 간신히 인정받아 사용료를 내지 않기로 했다.
금융권이 ‘특허 전쟁’으로 뜨겁다. 외국계 금융회사가 시비를 걸면 자칫 특허 하나 때문에 금융상품은 물론 시장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최근에는 IT·통신업계가 금융업 관련 특허를 잇따라 출원하며 ‘전투’에 가세해 위기감이 더욱 높다. 이에 따라 금융권은 정부와 공동으로 대응팀을 만드는 등 서둘러 방어막 쌓기에 나섰다.
6일 금융권과 특허청에 따르면 금융 특허 출원건수는 매년 크게 늘고 있다. 금융 서비스 및 사업 모델 등 금융 특허를 뜻하는 ‘BM(Business Model)’ 특허 출원건수는 2008년 4788건에서 지난해 6167건으로 증가했다. 특허 등록건수도 2008년 1101건에서 지난해 1579건으로 많아졌다.
특히 업계에서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뱅킹이 확산되면서 IT·통신업계의 금융 특허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본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나 현황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IT나 통신업계와 제휴한 금융상품·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이들 업계의 특허 출원·등록도 증가세”라며 “금융권, 비금융권 가리지 않고 경쟁적으로 특허를 출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찮다. 금융서비스 특허는 내용이 조금만 달라져도 특허권을 주장할 수 없어 실효성이 적다는 단점이 있다. 한 은행이 특허를 내더라도 다른 은행이나 비금융권 회사가 방식을 조금만 바꿔 특허를 내면 독점권을 주장하기 쉽지 않다. 특허 출원에서 등록까지 최소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려 특허 방어도 어렵다.
이에 따라 17개 시중은행은 금융결제원과 공동으로 ‘금융·지급결제 특허·기술 대응반’을 만들고 지난 7월 26일 첫 회의를 열었다. 회의의 초점은 갈수록 늘어나는 IT·통신업체들의 금융서비스 특허 출원에 맞춰졌다. 관련 동향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금융서비스 특허를 개발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특허전에 대비키로 했다.
시중은행 특허 담당자는 “외국계 금융회사가 언제든지 국내 금융회사에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며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은행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높다”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