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괴물
입력 2012-09-06 18:52
몇 년 전에 크게 흥행했던 ‘괴물’이라는 영화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한강에 나타난 괴물과 그 괴물에게 딸을 빼앗긴 한 가족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나주 사건 이후 며칠 동안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마다 나영이 사건까지 함께 다루며 여전히 별 대책이 없어 보이는 정부를 탓했고, 강력한 대응과 처벌을 촉구했다. 기사들을 읽다 보니 그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속의 괴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계 생명체가 아니라 한강에 버려진 독극물에 의해 괴물이 되어 버린 돌연변이 생명체다. 사람들에 의해 제 모습을 파괴당한 그 생명체가 뭍으로 나와 사람을 공격하니 사람들은 그것을 ‘괴물’이라 불렀다.
나주 사건의 범인도 원래부터 ‘괴물’은 아니었다 한다.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학대받고 자랐다 하니 오염된 환경이 만든 사회적 돌연변이인 셈이다. 그가 세상에 나와 한 아이의 인생과 그 가정을 무참히 망가뜨렸다.
그래서 1997년 이후 잠정 폐지된 사형제를 되살려야 한다는 사람도 많다. 그것이 정의고 그래야 유사한 범죄가 덜 발생할 것이라는 얘기다. 정의인 것은 알겠으나 유사 범죄가 줄어들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재범률이 60%를 넘는 성범죄자 하나를 사형시킴으로써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극약처방일 뿐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닌 듯싶다.
생태계에서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학자들은 발생 원인을 찾고자 한다. 원인이 되는 부분을 수정하여 생태계를 보호하고자 함이다. 사회적 돌연변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을까. 분노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이런 범죄가 급증한 원인으로 경쟁 지향적인 사회 속에서 소외되고 고립된 계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의 부재를 꼽았다. 이들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 없이 범죄 예방과 처벌만 논한다면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영화 ‘괴물’의 마지막은 이렇다. 몇 년 후 살아남은 아버지는 언뜻 평안해 보이지만 바람소리에 놀라 손에 총을 들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음산한 한강의 모습은 그날 이후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음을, 그리하여 두 번째 괴물이 나타날 수도 있음을 말없이 보여준다.
나주 사건의 몇 년 후는 어떨까. 부디 영화와는 다른 결말이길, 적어도 지금보다는 제도적으로 나아진 미래이길 소망한다.
김희성 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