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신창호] 우상파괴 시간 맞은 안철수

입력 2012-09-06 18:51


‘2040세대’로부터 차기 대선주자로 각광을 받아온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요즘 연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몰랐던 그의 과거가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어서다.

“재개발 딱지로 아파트 투기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한국 최대 철강회사의 ‘거수기’ 사외이사 노릇을 하고 수억원의 급여와 스톡옵션 주식까지 받은 사실도 드러나게 됐다. 한참 전에는 재벌 2세들과 어울려 룸살롱을 드나들었다는 정황도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앞으로도 어떤 증거들이 더 나올지 모른다.

안 원장의 과거 행적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만들어온 지금까지의 ‘안철수 이미지’와 너무도 상반되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청춘콘서트’로 전국을 순회하며 젊은이들을 만나고 약자와 서민의 삶을 위로하고 달래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안 원장의 ‘정치’는 본인의 능력보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의존해 있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기존 정치인보다 훨씬 깨끗해 보이는 도덕성, 상대방에게 부드럽게만 들리는 탈(脫)권위의 화법, 정치적 야심보다 시대적 요청에 복무하는 듯한 인상 등이 젊은 유권자들에게 크게 어필해 왔다. 한번 이미지가 만들어지자 그에게는 다른 무기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잠재적인 경쟁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만큼 정교한 정책과 공약이 없어도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대선에 대해 일언반구하지 않아도 정치권의 모든 인사가 그를 유력 대선주자로 대접해줬다.

이처럼 이미지 하나로 단숨에 실력자 자리를 꿰차자 안 원장과 측근들은 더더욱 이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을 노출해 왔다. 안 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비공개한 뒤 슬그머니 자신에게 유리한 모습을 흘리기도 했다. 대선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도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점이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안개만 피우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하지만 이미지는 언제든 깨어지기 마련이다. 그것과 맞지 않는 사실 몇 개만으로도 마치 거대한 판유리가 아스팔트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듯 산산조각 나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 같은 기존 정치인보다 안 원장에게 언론의 ‘검증 칼날’이 무서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보통사람이라면 사소한 흠집에 불과할 문제들이 그에겐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 전체를 날려버릴 무서운 화살로 돌아올 수 있다. 벌써 정치권에선 ‘안철수 피로증후군’이 언급되고, 유권자들 사이에선 “안철수도 별게 없네”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돌고 있다고 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의 시선은 항상 착각을 야기한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기보다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사태를 보려 하는 게 인간 욕망의 일종이고, 이로 인해 온갖 아이돌(Idol·우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한때 ‘아이돌’에 버금갔던 안 원장은 이제 본격적인 우상파괴의 시간을 맞았다. 어차피 깨져버릴 우상이라면 스스로 자신의 껍데기를 뚫고 나와야 한다. 우상 안에 머물던 ‘거짓 행복’의 시간을 버린 채 홀로 험한 광야로 나설 수 있을 때 그는 진정한 정치인이 될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의 신화’에는 “문제는 찬란한 외침이 아니라 쓰디쓴 확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뭔가에 환상을 품다가, 그 환상을 다시 환멸하는 인간의 굴레를 빗대 한 말이다. 안 원장이 ‘쓰디쓴 확인’의 시험대를 통과해 더욱 굳건한 미래권력의 담지자로 설 수 있을까.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