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사랑을 쓰다… 문정희 신작 시집 ‘카르마의 바다
입력 2012-09-06 18:24
문정희(65) 시인은 지난해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머물렀다. 이탈리아 카포스카리대학이 주관하는 예술가 초청 프로그램 첫 번째 수혜자 자격이었다. 숙소는 토마스 만이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쓴 호텔 데스바인스 바로 뒷골목, 아드리아해의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리도 숲 속의 작은 호텔 2층이었다. 베니스영화제가 휩쓸고 간 가을의 해변은 스산했다. 황금사자상을 놓고 벌이던 사랑과 경쟁과 화려한 조명들이 꺼진 쓸쓸한 비엔날레 앞의 온실 카페 ‘세라’에서 그는 카푸치노를 마시며 시를 썼다. 밤이 되면 온실 외벽은 흑백필름이 돌아가는 화면이 됐고 쇼팽의 선율이 추운 마당을 구슬처럼 뒹굴었다.
“나는 속아서 이곳에 왔다/ 물을 사랑하므로 기꺼이 속아버렸다// (중략)// 나는 불온한 딸/ 어찌하여 아무 데나 던져도 일어서는 물이었던가// 나는 속아서 이곳에 왔지만/ 어디든 솟는 물은 나의 잉크, 출렁이는 상처, 으르렁거리는 표범이니/ 생애의 양식은 풍부하다/ 유배가 풀리더라도/ 결코 아는 길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물의 초대’ 부분)
베네치아는 관능적인 물의 도시이다. 물은 정화와 갱생의 상징이다. 그는 베네치아에서 지친 영혼을 씻고 시인으로 생생하게 일어서고 싶었다. 신작 시집 ‘카르마의 바다’(문예중앙)는 이렇게 탄생했다.
산마르코 광장 건너편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의 당돌한 컬렉션들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고 수로 위에 꿈처럼 걸린 다리들을 건너며 생의 의미를 곱씹었다. 아니, 기꺼이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나의 자리인가요/ 탑처럼 서서 듣는 저 종소리가/ 나의 시인가요/ 종소리 속의 쇠 울음, 짐승의 시간/ 애달픈 육체// 기꺼이 길을 떠나/ 기꺼이 길을 잃어버린 대낮/ 시간이 탕약처럼 졸아든 고도(孤島)의 한가운데/ 길이 물이고 물이 길인가요”(‘길 잃어버리기’ 부분)
천년을 헤아리는 성당 골목의 미로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다 지친 몸을 끌고 호텔 방에 들어오면 지렁이가 있었다. 지렁이는 그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이런 시가 써졌다.
“빈방에 돌아와 옷 벗어 걸다 말고/ 뭉클 발에 밟히는 지렁이를 본다/ 길고 긴 맨살의 감촉// 어떻게 올라왔을까 외딴 이층 방까지/ 온 몸으로 쇠창살을 넘고 넘어/ 급경사 대리석 계단에 피 얼룩을 묻히며/ 몇 번이나 비명을 떨어뜨렸을까”(‘감촉’ 부분)
곤돌라와 바람둥이 시인 카사노바(1725∼1798)의 이야기를 합치면 베네치아는 완벽한 카니발 도시가 된다. 그 카니발 도시로 밀려드는 관광객들 틈에 끼어 이제 정념 시절을 거쳐 육십 중반에 이른 문정희는 이렇게 조용히 읊조린다.
“사랑시는 물에다 써야 한다/ 출렁임으로/ 다만 출렁임으로 완성이어야 한다// 위험한 거미줄에 걸린/ 고통과 쾌락의 악보/ 사랑시 한 줌의 이슬 방울들/ 저녁 물거품이 상륙하기 전의/ 꿈같은 신방//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면/ 이윽고 썰물을 따라/ 가뭇없이 사라지는 물거품의 가락으로// 사랑시는 물에다 써야 한다/ 물에서 태어나고/ 사라지는 물의 시집이어야 한다”(‘물의 시집’ 전문)
베네치아는 모든 시인들의 미래이다. 출렁임 그 자체로 완성되는 물의 도시에서 문정희는 죽는 순간까지 사랑을 하고 싶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