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박종록] ‘우리’ 모두의 죄
입력 2012-09-06 19:05
무차별 살상, 아동성폭행 등 잔혹한 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최고권력 주변의 뇌물수수 등 부패행위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민들은 분노하여 그들의 악마성, 비인간성, 파렴치성에 치를 떨고 비난한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엄벌에 처하는 것으로 근절될 것인가.
무차별 살상행위의 심리적 근저에는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는 고립감, 아무리 노력해도 현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좌절감, 상대적으로 행복해 보이는 이들에 대한 시기심,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성 허무감이 복합적으로 폭발한 결과라는 것이 범죄심리학적 설명이다.
아동성폭행은 무차별 살상과는 좀 다르다는 게 범죄심리학의 이론이다. 이는 개인적인 욕구충족 본능의 발로이며, 유전적 소질과 사회교육적 환경 등의 요인으로 비뚤어진 성충동의 해소현상이라는 것이다. 권력층의 부정과 부패는 극단적인 이기심의 발로이다. 가진 권력 이상의 더 큰 권력을 지향하고, 이 권력을 바탕으로 가진 재산 이상의 더 큰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이기적 욕망이 자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부정과 부패의 유혹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이 모든 범죄행위는 상응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들의 범죄행위가 그들만의 잘못이고 그들만 처벌받으면 그것으로 끝인가 하는 점이다. 그들과 우리는 무관한 것인가.
범죄자들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고, 소중한 형, 아버지, 가족일 것이다. 다만 그들의 잘못은 자신만의 에고 속에서 그들이 속한 사회 즉 ‘우리’라는 한 차원 높은 공동체의 윤리와 규범을 잊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와 내 가족이 소중하면 남과 그 가족도 소중하며 내 생명, 남의 생명 가릴 것 없이 인간의 생명은 귀중한 것이며,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한을 부여한 공동체, 즉 국민, ‘우리’ 모두를 위하며 직분에 충실해야지 ‘나’ 개인의 욕망 충족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사하고, 남용하고 결국 부정과 부패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공동체 의식,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최소한의 규범과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도 ‘나’와 ‘우리’가 조화롭게 공존하며 같이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교육을 해왔고, 종교의 이념도 사랑과 헌신을 앞세워왔다. 때문에 우리 속의 대다수 ‘나’라는 존재들은 대체적으로 공동체 규범을 지키면서 선량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소외감과 절망감에서 비롯된다는 무차별 폭력과 관련해 가족과 사회의 무관심과 냉대, 이기적이고 변태적인 아동성폭행의 온상이 되는 외설적인 영상과 간행물들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우리 모두에게 일말의 책임도 없는 것인가. 정치인과 권력층의 부정과 부패와 관련해 이들을 지도자로 뽑은 사람은 또 누구인가. 어느 유명한 사회학자는 “범죄자도 정치인도 결국 그가 속한 사회와 국민의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고 설파하였다. 결국 이들의 범죄행태에는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의 개인주의 ‘나’의 이기적 측면이 방조 내지 묵인하였다는 죄책이 함께 묻어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불의를 보고도 ‘나’와 무관하다고 외면하고, 청소년의 비행을 눈앞에 보면서도 ‘내’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관하며, ‘나’와 연줄이 닿는다고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과 권력자에 찬동하고 아부하고 청탁하는 ‘나’의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우선하는 한 ‘내’가 속한 ‘우리’ 공동체인 사회의 개선과 발전은 요원하다 할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들의 범죄행위에 일말의 반성과 자책감을 느끼게 된다. 어차피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에 ‘나’를 완전히 버리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으나, ‘나’의 뜻대로 행동하기 전에 ‘우리’라는 공동체를 떠올리는 여유를 가진다면 ‘나’와 ‘우리’ 모두에게 좀 더 밝은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안타까운 작금의 현실은 전자발찌나 화학적 거세, 형벌만이 능사가 될 수 없고, 우리 모두의 자성과 책임감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돌아보게 하고 있다.
박종록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