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 시각장애 1호 판사 “장애인들 노력하면 직업 가질 수 있게 공적·사회적인 지원 시스템 활성화돼야”
입력 2012-09-05 19:28
“장애를 그저 차이로 느낄 수 있도록 공적 제도가 활성화돼 장애인들이 노력할 경우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합니다.”
국내 시각장애인 1호 판사인 서울북부지법 최영(32·사진) 판사는 5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장애 이해 워크숍에서 “이런 강연 자리는 처음”이라면서도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자리는 전국특수교육정보화대회 10주년 기념 고위관리자 초청으로 마련됐으며, 이성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등 10여명의 기관장이 참석했다.
최 판사는 “이 자리에 서기까지 주위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30여분 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담담하게 소개했다. 그는 강연을 하기 전 파일을 소리로 읽어 주는 리더기를 작동해 관련 법률 조항을 듣는 상황을 참석자들에게 보여줬다.
최 판사는 “고3 때에야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점점 시야가 좁아지면서 대학졸업 무렵엔 눈이 안 보여 사법시험을 포기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아픈 과거를 털어놨다.
그는 시각장애인으로 살기 위해 서울맹학교와 장애인고용공단을 찾아가 상담을 했었다. 그러나 뾰족한 대책이 없어 취직문제로 1년간 방황을 했다. 그가 다시 희망을 갖게 된 것은 같은 대학의 시각장애인 후배로부터 ‘센스리더’라는 화면낭독 프로그램을 소개받으면서였다.
최 판사는 “정인욱복지재단 도움으로 교재를 파일로 만들어 사법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다”면서도 “이런 사적인 도움보다 국립장애인도서관 등 공공기관에서 서비스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판사는 점자로만 시험을 치르도록 한 사법시험 제도 응시방법을 개선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헌법의 평등권을 근거로 전자파일을 읽는 방식의 컴퓨터를 이용한 응시방법을 법무부에 제안했고, 제안한 지 한 달 만인 2006년 2월 정부가 이를 개선했다.
그는 사법연수원 과정을 마친 뒤에도 판사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때 영국의 한 시각장애인 판사가 멘토 역할을 자처해 법관으로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최 판사는 리더기, 책을 파일로 입력해준 복지재단, 법무부의 컴퓨터 시험제도 도입 등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음을 상기시키면서 “판사 근무 과정에서는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 특성에 맞게 공적 사회적 제도를 통한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모든 장애인이 쉽게 자료에 접근할 수 있고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기본적인 것들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운 좋은 사람만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