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박균열] 준법과 입법의 선행조건

입력 2012-09-05 19:20


“돈은 모든 부패의 연결고리이자 매개체… 자금 이동 투명한지 살필 수 있어야”

현대 민주정치의 기본은 공화주의와 대의제(代議制)이다. 공화주의는 만백성의 의사가 주체라는 뜻이고, 대의제는 같은 장소에서 백성들이 동시에 사사건건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기간 자신의 권리를 ‘정치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에게 대신 행사하게 하는 제도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소위 대선정국을 맞아 헌법 개정문제에서부터 현실에 맞지 않는 여러 가지 법안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많다. 일부에서는 돈이 많이 드는 우리 정치 현실을 지적하며 지키기 쉽지 않은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심지어 너무 가혹한 선거법 때문에 정치인들의 선출권한이 유권자에게 있지 않고 검찰이나 법원에 있다는 비판적인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의 핵심은 현재 시행되는 선거관련 법이 너무 엄격해 정치인들이 실제 맡은 임무를 수행도 하기 전에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땅한 지적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이르는 과정은 다른 각도에서도 조명될 필요가 있다. 즉 입법 소요를 파악하는 과정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가령, 선거를 치르는 비용이 얼마 이상인데 실제 선거법에서는 그보다 낮게 책정을 해두었다면 시세와 통념을 반영하는 등 연동적인 법 개정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이 입법과 개정소요를 연동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공화제 민주정치의 주인인 백성들의 염원을 실시간으로 반영한다는 뜻이다. 과연 이러한 주장이 현대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치적 수준에 부합되는가 자문해보면, 해답을 장담할 수가 없다. 설령 실제 선거비용을 감안해 덜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더욱 심각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이다.

우선 정치인들, 특히 법을 만드는 사람(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의회 의원)과 유사기능을 수행하는 행정부 등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그 가능성이다. 우리 국회의원의 경우 헌법 43조에서 겸직 금지를 규정하고 있지만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 설령 비영리단체의 직위라고 하더라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해당 정치인이 소속된 단체들이 입법과정에서 다양한 압력행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을 입법예고했는데 공직자들이 더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직사회의 건전성을 의심하게 하고 있다.

다음은 국가전반에 걸쳐 있는 절차의 투명성이다. 절차가 투명하면 부정이나 로비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권리를 대신할 정치인의 행동은 프라이버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투명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모든 부패의 연결고리이자 매개체라고 할 수 있는 자금 이동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보다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 불행하게도 2011년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를 볼 때 한국은 183개국 중 43위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회원국 중 27위를 했다.

공화주의와 대의제 민주정치 이념을 담고 있는 현행 헌법과 그 정신이 지속되는 한 우리 국민은 정치인들을 선출해야 한다. 정치인은 고도의 공익을 담보하기 때문에 무사심의 정신이 필요하다. 실제로 이들은 우리 사회를 위해 많은 공익 봉사를 하고 있다. 그 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스스로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을 하는 건 무리다. 오히려 시민단체나 학자들이 해야 할 몫이다.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악법도 법이다’라고 주장한 소크라테스의 투철한 준법정신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철학자인 롤즈(J. Rawls)는 그의 역작 ‘정의론’에서 계약당사자들은 계약 조건들에 대해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을 쓰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법이 너무 가혹해서 지킬 수 없으므로 고쳐야 한다는 실용적 입법관이 아니라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공평해야 한다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정신과도 상통한다.

박균열 (경상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