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정철훈] 박근혜와 아버지의 자리
입력 2012-09-05 19:19
여름의 끝자락에 매미들이 마지막 목청을 돋우고 있다. 사극을 보면 어전회의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임금이 썼던 ‘익선관’은 날개 익(翼)에 매미 선(蟬) 자를 써서 매미의 곧추 모은 날개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고, 신하들이 썼던 ‘오사모(烏紗帽)’는 매미의 펼친 날개 모양을 형상화한 관모였다.
이것만 보아도 매미에게는 군신(君臣)이 본받아야 할 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진나라의 시인 육운(陸雲)은 매미의 오덕(五德)을 이렇게 짚었다. 곧게 뻗은 긴 입 모양이 마치 선비의 갓끈 같다고 해서 ‘문(文)’이요, 이슬과 수액만을 마시며 산다 하여 ‘청(淸)’이요, 밭곡식을 축내거나 과일을 해치지 않아 염치가 있다는 뜻에서 ‘염(廉)’이요, 제 살 집조차 짓지 않을 만큼 검소하다 하여 ‘검(儉)’이요, 철에 따라 허물을 벗고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고 있다 하여 ‘신(信)’이다.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면 이 중에서 으뜸은 신일 것이다. 매미 애벌레가 허물을 벗을 때는 인간의 산고(産苦)에 해당하는 처절한 몸부림을 겪는다고 한다.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의 경우도 자신의 정치 인생에 날개를 달기까지 허물벗기는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허물벗기는 아버지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지배계급에서 지배계급으로의 수평적 이동을 유권자가 얼마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필요하다면 아버지의 유령이라도 불러내어 일종의 대질심문 같은 과정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안개에 싸인 듯한 대선 정국을 지켜보고 있는 대다수 유권자들은 박 후보가 허물벗기라는 이 대상 없는 리얼리티를 어떻게 돌파해낼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모든 허구적 글쓰기를 거부한 채 자전적 소재에 몰두하고 있는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 ‘남자의 자리’를 박 후보에게 권하고 싶다.
‘남자의 자리’는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아 왔던 한 남자의 삶을 되짚는다. 소 치는 목동에서 공장 노동자로, 또 소상인으로 조금씩 신분을 높여가며 착실하게 살아온 남자. 다만 그는 지식인으로 간주되는 사람에 대한 막연한 경외감과 열등감을 품고 살아왔다. 에르노가 바로 이 남자, 즉 아버지에 대해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닥친 가장 큰 난관은 아버지라는 대상이 아니라 아버지가 항상 열등감을 느꼈던 ‘적(敵)의 언어’로 글을 쓰는, 지배자들에게서 글쓰기 기술을 ‘훔쳐와’ 사용하는 서민 출신 화자(話者)로서의 그녀 자신의 상황에 관한 것이었다.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에 식료품 가게를 낸 부모를 도우며 성장한 에르노는 열여덟 살 때 파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라는 신분 상승을 이루었지만 그가 배운 지배계급의 언어로는 도저히 아버지의 생애를 복원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아버지보다 배움의 기회가 많았던 에르노는 점점 아버지가 동경하던 세계에 다다르지만 그럴수록 둘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뿐이다.
그가 아버지라는 한 남자의 인생을 거리두기라는 객관적인 시선의 문체로 쓰기까지엔 아버지 사후 무려 15년의 세월이 걸렸던 것이다. 아버지와 그 자신을 배출했고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 즉 지배받는 자들의 세상을 배반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이룩한 신분 상승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언어로 그 생애의 리얼리티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박 후보가 지난달 말, 전태일재단을 방문해 정치적 대척점에 서 있는 세력을 껴안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지만 제동이 걸린 것은 진정성의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그건 바로 아버지의 공(功)과 과(過)가 묻어 있는 유신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 칼을 대는 일이다. 에르노는 ‘남자의 자리’를 출간한 후 이렇게 말했다. “내겐 글쓰기가 칼처럼 느껴져요. 거의 무기처럼 느껴지죠. 내겐 그게 필요해요.”(아니 에르노 ‘칼 같은 글쓰기’)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