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이대론 안된다] “그 후 우리집 누구도 정상 아니다”

입력 2012-09-05 21:16

지난해 말 A씨는 집에서 강도에게 흉기로 위협을 당했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지만 사건 이후 A씨는 트라우마 때문에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A씨는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은 뒤 서울 풍납동 스마일센터를 찾아 심리평가와 치료를 받았다.

성폭행 등 강력범죄의 트라우마에 시달려 고통을 받는 것은 피해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도 마찬가지다. 충남 천안의 특수학교 교사가 지적 장애인 학생을 성폭행한 ‘천안판 도가니 사건’ 피해자 B씨(20)의 가족은 사건 이후 삶이 180도 달라졌다. B씨 어머니는 사건의 충격 때문에 잦은 빈혈과 하혈로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두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 그는 “딸이 내 옆에 꼭 붙어 있는데도 누군가 다가오면 ‘엄마, 빨리 다른 데로 가자’고 말한다”며 “그 사건 이후 우리 가정 그 누구도 정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2년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C양(당시 14세)은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아버지의 동료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C양의 어머니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고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C양은 생계를 위해 성매매를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인면수심의 범행이 결국 한 가정을 통째로 파탄 낸 것이다.

성폭행 사건은 피해자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법무부는 강도·강간·살인·성폭행·방화 등 5대 강력범죄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심리치료 지원을 위해 2010년 7월부터 스마일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8월까지 100건이 접수됐다. 이 중 60∼70건은 심리치료를 진행했다.

한국피해자지원협회는 2007년 서울 광진구 일대의 법조인, 의료인, 기업인들의 소모임을 시작으로 2010년 공식 출범했다. 협회는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이사비용 지원과 대출금 알선도 돕는다. 협회는 올해 96건의 피해자를 지원했다.

7월 통영에서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초등학생 한아름(10)양의 아버지도 지난 7월부터 협회 상담사와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 김병년 협회 상담국장은 “피해자와 가족들은 정신적인 피해뿐 아니라 아이들 양육문제와 더불어 생계 문제. 법적 대응, 보험, 등 처리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