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불신이 팽배해 가슴 아파”… 남규홍 PD, 방송가 트러블메이커 ‘짝’을 말하다

입력 2012-09-05 18:19


SBS ‘짝’은 방송가 트러블메이커다. 매주 수요일 밤 방송이 나가면 온라인은 ‘짝’을 비난하는 글로 도배된다. 제작진을 질타하는 기사도 잇따른다. ‘여자 ○호 직업 논란… 쇼핑몰 홍보하러 나왔나’ ‘남성미 넘치던 남자 ○호, 알고 보니 성인물 주인공’ ‘짝, 계속되는 논란, 이대로 괜찮나’….

급기야 지난달 22일엔 예정된 방송분이 결방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한 여성 출연자의 과거 성인 방송 출연 경력이 문제가 됐다(방송에서 이 여성은 ‘요리 외길’을 걸어온 요리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제작진은 “우리도 속았다”며 법적 대응을 선포했다. 하지만 제작진을 향한 여론은 싸늘했다. 반복된 출연자 자질 시비는 제작진 책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삐뚤어진 결혼관, 출연자들이 가볍게 ‘사랑’을 말하는 모습 등이 전파를 타는 것을 두고 불쾌해하는 시청자도 적지 않다.

거듭되는 논란과 끊임없는 비난, 그렇다면 ‘애정촌 촌장’을 자임하는 남규홍(47) PD의 입장은 어떠할까. 우선 그의 심경은 지난달 28일 트위터 글에서 엿볼 수 있다. “심신이 피폐하는 것보다 인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는 게 아픔이다. 대중들도 기자들도 참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최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남 PD를 만났다. ‘짝’이 일으킨 논란들을 언급하자 “그런 비난을 받아도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대화가 계속되자 대중과 언론의 질타에 대한 섭섭함을 나타냈다.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사람들에게 야속해하는 모습이었다.

-‘짝’은 ‘욕하면서 보는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은 왜 ‘짝’을 불편해할까.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짝’은 적나라한 프로그램이다. 짝’에는 누구나 인정하기 싫지만, 저마다 갖고 있는 (배우자의 ‘스펙’ 등을 따지는) ‘나의 모습’이 있다.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는 게 민망하고 불편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남을 험담하기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시청자들은 일반인 출연자를 대면할 일이 없는 만큼 마음껏 욕하고, 나아가 프로그램 자체도 쉽게 비난한다.”

-시청자나 언론의 비난이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방송 프로그램은 인간의 일생과 묘하게 닮아 있다. 한 프로그램의 수명이 최대 10년이라면, 지난해 3월 첫 방송된 ‘짝’은 이제 10대 후반인 사춘기 청소년이다. 우린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그런데 부모님이, 선생님이 와서 ‘공부하라’며 계속 뒤통수 한 대씩 때리고 간다. ‘내가 정직하지 못한 방송을 만들었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과하게 돌을 던진다. 관심을 가져주는 건 좋다. 하지만 강아지 예쁘다고 심하게 주무르다 보면 결국 강아지는 죽게 된다.”

-매번 출연자 자질이 논란이 된다. 이런 건 분명히 제작진이 책임져야 할 부분인데.

“구구절절하게 말씀드릴 게 없다. 앞으로 더 신중하게 출연자를 섭외할 것이다. 이번에 겪은 결방 사태는 정신무장의 계기가 됐다. 면접도 더 많이 보고 인터넷 등을 통해 할 수 있는 조사는 다해볼 것이다. 아울러 ‘애정촌’에서 출연자들의 언행이 노출되는 ‘수위’를 낮출 생각이다. 방송이 재미없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 좀 더 가려서 내보내는 게 출연자를 보호하는 일인 것 같다.”

‘짝’은 ‘애정촌’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일반인 10여명이 일주일간 합숙하며 자신의 배우자감을 물색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짝’ 출연을 신청한 누적 시청자 수는 7000여명. 이들 중 그동안 서류전형과 면접 등을 통과한 400여명만이 ‘애정촌’ 입소 기회를 잡았다.

-캐스팅 기준이 있다면 뭔가.

“제작진들에게 우스개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출연 우선순위를 매기면 ‘광물-식물-동물-인간’ 순이라고.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광물 캐릭터는 최악이고, 온기가 없는 식물형 인간도 안 된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동물형은 그나마 괜찮다. 최고는 사람 냄새가 나는 지원자다.”

-400명 넘는 남녀의 ‘구애 행각’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이성에게 어필하는 최고의 ‘스펙’은 뭔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언행일치’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이성에게 호감을 줄 수 없다.”

-화제성에 비해 시청률 경쟁에서는 동시간대 ‘황금어장’(MBC)에 밀리는 모습인데.

“우린 ‘가마솥 전략’으로 가고 있다. 전기밥솥을 사용하면 밥을 빨리 지을 순 있지만 ‘가마솥 밥’이 갖는 풍미를 따라올 수 없다. 힘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열심히 밥을 지을 것이다. ‘짝’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인터뷰 서두에 ‘짝’이 사춘기를 겪는 10대라고 표현했다. 훗날 ‘성인’이 된 ‘짝’은 어떤 모습인가.

“히말라야 고봉(高峯)을 한 번에 정복할 수는 없다. 우린 이제 첫 번째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이제 제2의 베이스캠프로 떠나려 한다. 언젠가는 사람 냄새나는 프로그램, 인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방송이 돼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애정 어린 비난과 충고는 얼마든지 수용하겠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