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다큐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평화의 큰 울림… 2005년 라말라 실제공연 바탕
입력 2012-09-05 18:08
시리아 소년은 전에 이스라엘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에게 이스라엘인은 자기 나라의 운명은 물론 아랍 전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일뿐이다. 그런데 이 소년이 이스라엘 첼리스트와 함께 한 무대에 서게 됐다. 그들은 똑같은 강약으로 똑같은 주법으로 똑같은 음으로 똑같은 곡을 연주했다.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통해서다.
독일 영화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국내 개봉 규모는 작지만 큰 울림을 주는 음악 다큐멘터리이다. 2005년 팔레스타인 수도 라말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공연을 바탕으로 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70)은 1999년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와 함께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중동계 출신 젊은이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한 달에도 몇 번씩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하는 중동 지역에서 적대국 젊은이들이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러나 반신반의하는 세간의 관심 속에서도 오케스트라는 만들어졌고 성장을 거듭해갔다.
바렌보임은 이 프로젝트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친분이 있는 파울 슈마츠니 감독에게 현장 스케치를 부탁했다. 이렇게 시작된 촬영이 7년을 거치며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에 모인 이들은 처지가 각양각색이다.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이스라엘 등 국적도 다르고 나이도 종교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바렌보임의 지휘 아래 연주를 함께 하면서 역사나 정치 이념 따위는 사라진다. 인접국이지만 서로 전화통화도 안되는 상황. 아랍 국가에서 온 이들은 이스라엘인을 보고 “겪어보니 똑같은 사람”이라고 신기해한다. 사람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타인의 고통과 진심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바렌보임의 말처럼 ‘유대인이 실수하지 않고 잘해내기를 아랍인이 간절히 바라는’ 매우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진다. 독일 스페인 공연까지 하게 된 이들의 꿈은 세계에게 가장 위험한 무대인 팔레스타인 수도 라말라 무대에 서는 것. 특히 이스라엘 출신 연주자에게는 목숨 걸고 가야 하는 상황이다.
다큐멘터리는 그 과정을 생생하고 밀도 있게 담았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비롯한 다양한 클래식 음악은 영화의 보너스. 음악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화해의 시작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6일 개봉. 전체관람가.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