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라 꽃단장·초록의 등고선·순백의 세모시·하늘색 풍경화… 평창! 초가을 4색 풍경

입력 2012-09-05 18:18


초가을 문턱을 넘은 강원도 평창의 산하만큼 다양한 표정을 짓는 곳도 드물다. 양떼가 뛰어노는 백두대간 고갯마루에서는 풍력발전기가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출하를 앞둔 고랭지배추는 등고선을 그리며 산자락을 초록치마처럼 감싸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깊은 산속에서는 연보랏빛 벌개미취가 건듯 부는 바람에 꽃멀미를 일으키고, 심심산골을 흘러온 벽계수는 이끼계곡에서 진경산수화를 그린다.

벌개미취 군락(한국자생식물원)=황병산 자락 비안골에 위치한 한국자생식물원은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야생화 1200여 종이 사계절 피고 지고를 거듭한다. 가을의 길목에 접어든 요즘 식물원은 여름꽃과 가을꽃이 뒤섞여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범부채 강활 마타리 등은 내년을 약속하고, 구절초 개미취 금불초 꿩의비름 등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한국자생식물원의 벌개미취 군락은 1만2000㎡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완만한 경사의 구릉을 가득 메운 벌개미취 군락은 해질녘 연보라색으로 물든 구름이 내려앉은 듯 황홀한 풍경을 그린다. 들국화의 일종인 벌개미취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고려 쑥부쟁이로도 불린다. 꽃이 예쁘고 개화시기도 길어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다.

고랭지 배추밭(고루포기산)=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와 수하리, 그리고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의 경계에 위치한 고루포기산(1238m)은 고랭지 배추밭으로 유명하다. 독수리날개처럼 펼쳐진 산비탈을 따라 99만㎡ 넓이의 배추밭이 광활하게 펼쳐지는 고루포기산은 출하를 앞두고 속이 꽉 찬 배추밭이 촘촘한 등고선을 그려 사진작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

고루포기산을 오르려면 강릉시 대기4리의 안반덕을 통과해야 한다. ‘안반덕’은 떡메로 떡살을 내려칠 때 쓰는 안반처럼 평평한 둔덕이라는 뜻으로 해발 1000m가 넘는 고원이 온통 고랭지 배추로 뒤덮여 있다. 원래 자갈만 있던 둔덕을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0년대에 화전민이 개간했다. 평창 미탄면의 청옥산 육백마지기도 고랭지 배추밭으로 유명하다.

이끼계곡(장전계곡)=평창군과 정선군에 걸쳐 있는 가리왕산(加里王山)의 서북쪽에서 발원해 오대천으로 합류하는 장전계곡은 작은 폭포와 초록 이끼로 유명하다. 진부IC에서 정선으로 이어지는 59번 국도를 타고 20여분쯤 달리다 막동폭포를 지나면 열목어가 서식하는 장전계곡이 시작된다. 폭이 좁고 깊은 장전계곡은 최근 늘어난 수량으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장전계곡 상류의 이끼계곡은 59번 국도에서 시멘트 길을 따라 약 4㎞. 어둑어둑한 계곡에 들어서면 이끼에 뒤덮인 바위 틈새로 하얀 계류가 실비단처럼 흐른다. 쓰러진 나무조차 초록 이끼에 뒤덮여 원시의 장관을 연출하는 이끼계곡 중 사진촬영에 적당한 구간은 약 200m. 가느다란 물줄기가 이끼바위를 흐르다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대관령 초원(한일대관령목장 2단지)=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는 3300만㎡ 규모의 대관령 초원을 비롯해 황병산에서 소황병산, 매봉, 선자령을 거쳐 능경봉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백두대간 능선을 한눈에 보려면 한일대관령목장 2단지의 정상에 올라야 한다. 여인의 머릿결처럼 고운 목초가 바람과 함께 춤을 추고 바람개비를 닮은 풍력발전기가 이색적인 풍경화를 그린다.

목장 입구에서 정상인 하늘채까지는 약 3㎞. 자동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목장 길을 올라가면 양떼가 노니는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뭉게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하늘도 아름답지만 해질 무렵 백두대간 능선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이 환상적이다. 이른 아침에 운해 위로 솟은 구릉과 풍력발전기의 모습도 이곳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

평창=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