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봉평 들녘은 새하얀 소금밭
입력 2012-09-05 18:17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가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가산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은 요즘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했다. 태기산을 비롯해 흥정산, 회령봉 등 1000m가 넘는 고산준령에 둘러싸인 강원도 평창의 산골마을 봉평은 이효석이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곳.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을 비롯해 ‘산협’과 ‘개살구’의 무대인 남안동마을과 흥정리, 속사고개 등이 1930년대의 모습을 흐릿하게나마 간직하고 있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장돌뱅이 허생원이 계집과 술을 마시던 동이의 따귀를 때린 충주집은 실재하던 주막. 장날 아니면 장터인지도 모를 봉평장의 좁은 도로 3층 건물 뒤편 손바닥만한 공간에 충주집 터를 알리는 안내석이 외롭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가산공원의 충주집은 복원된 초가주막.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줏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레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젊은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와 하룻밤을 보낸 물레방앗간은 본래 봉평장터 옆에 있었으나 1991년 이곳이 효석문화마을으로 지정되면서 흥정천 건너편 산자락으로 옮겨왔다.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의 하룻밤 첫사랑이라도 상상했는지 세월을 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방앗간을 기웃거리는 젊은 연인들이 얼굴이 감홍시처럼 붉어진다.
봉평은 예나 지금이나 산허리는 물론 흥정천 개울가 등 곳곳이 메밀밭이다. 봉평의 메밀밭은 약 20만평으로 물레방앗간과 이효석 생가, 그리고 평창무이예술관 주변이 돋보인다. 특히 물레방앗간 주변의 메밀밭에는 초가지붕 원두막이 군데군데 서 있어 메밀꽃이 만개하면 풍경화를 연상시킨다.
초록색 카펫에 굵은 소금을 뿌린 듯 피는 메밀꽃은 하루 중 느낌이 사뭇 다르다. 비바람에 가녀린 꽃대가 흔들릴 때는 하얀 파도가 넘실대듯 아찔하고, 비 그친 후 피어오르는 산안개를 배경삼은 메밀밭은 수묵화처럼 고요하다. 아침햇살 머금은 황금색 메밀꽃과 달빛에 젖은 푸른색 메밀꽃은 이 세상의 어떤 물감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천상의 그림. 문학의 향기 그윽한 메밀밭 밭두렁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책하는 이들이 구름 속을 거닐 듯 황홀하다.
이효석이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보낸 생가는 물레방앗간에서 약 1.4㎞. 가족이 일찍이 집을 팔고 이사 가는 바람에 생가의 주인은 다른 사람이다. 현 주인의 증조부가 초가지붕을 함석지붕으로 바꾸는 등 개축을 거듭해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물레방앗간과 생가 중간쯤에는 초가집인 옛집과 이효석이 평양에서 살던 때의 집인 ‘평양 푸른집’도 복원돼 있다. 푸른집은 담쟁이덩굴이 지붕까지 뒤덮어 생긴 이름.
씨를 뿌린 지 한 달 만에 만개하는 메밀은 가뭄에 강하고 재배기간이 짧아 재해로 벼 등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할 때 대체작물로 심는 구황식물. 요즘은 메밀이 피를 맑게 해주고 피부미용에도 좋다고 해서 건강식과 미용식으로 인기가 높다. 덕분에 13년 전 처음 ‘평창효석문화제’를 열 때만 해도 3곳에 불과하던 메밀음식점이 50여 곳으로 늘어났다.
소설에서 허생원은 방울소리 처량한 나귀를 끌고 동이와 함께 봉평장에서 대화장까지 70리길을 달빛을 등불삼아 타박타박 걷는다. ‘효석문학 100리길’로 단장한 흥정천 옛 둑길은 제방공사로 약간의 흔적만 남아 있고, 달맞이꽃이 길섶을 수놓고 길이 좁아 세 사람이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서서 걷던 산길은 국도 6호선이 됐다.
‘효석문학 100리길’ 중 제1구간인 ‘문학의 길’은 물레방앗간에서 팔석정과 노루목 고개를 지나 속사천 여울목까지 7.8㎞. 팔석정은 조선시대 문인 양사언이 강릉부사 시절에 수려한 경치에 반해 정사도 잊은 채 8일간을 신선처럼 노닐며 경치를 즐겼다는 곳이다. 여덟 군데 바위에 낚시하기 좋은 바위라는 뜻의 석대투간을 비롯해 봉래, 방장, 영주, 석지청련, 석실한수, 석욕도약, 석평위기라는 글을 새겨 놓아 팔석정으로 불린다.
허생원과 나귀가 숨을 헐떡이며 넘던 노루목은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면서 절반은 없어졌다.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걷기에 충분한 고갯길은 온통 잡풀투성이. 수령 수백 년은 됨직한 노송 한 그루가 홀로 수십 년째 고갯마루를 지키고 있을 뿐 사위는 괴괴하기 그지없다.
물은 깊어 허리까지 오고 속 물살이 센데다 돌멩이도 미끄러워 허생원이 물에 빠졌던 여울목은 노루목에서 약 1㎞. 동이의 따뜻한 등에 업혀 나온 허생원은 동이가 자기처럼 왼손잡이라는 것을 눈치 챈다. 그리고 동이의 어머니이자 성서방네 처녀가 홀로 살고 있다는 충북 제천을 향해 길을 잡는다.
평창=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