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해영 (4) 세계 최고 옷을 만드는 하나님 일꾼이 되라고?

입력 2012-09-05 21:00


“오늘이 해영씨 생일이라 미역국을 끓였어요. 맛있게 먹고 일하러 가요.”

어느 날 아침, 출석하던 한국기독교장로회 용인교회 인미자 사모님께서 나를 교회 사택으로 초대했다. 사택에 가보니 아주 푸짐한 밥상이 놓여 있었다. 내게도 생일을 챙겨줄 사람이 있다니! 생전 처음 생일이라고 미역국을 먹었다. 이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은 당시 중고등부, 청년부나 어른들 모임에 끼지 못하고 겉도는 나를 직접 맡아 주셨다. 특히 사모님은 지난 몇 개월간 연고도 없고 어린 나를 진실하게 보살펴 주었다. 교회 사택에서 실비로 살도록 주선해 줬고, 방에 쌀과 반찬을 갖다 놔 주셨다. 그러나 이 두 분의 사랑과 관심은 내게 의문을 갖게 했다.

‘아니, 이 두 사람은 내게 무슨 잘못이라도 했단 말인가. 왜 내게 잘해 주는 거지. 나를 걱정하고 신경 쓸 정도로 시간이 많은가.’ 이런 의문은 두 분의 각별한 사랑을 받을 때마다 이어졌다.

어느 날 사모님은 월부로 책을 판매하는 여동생을 소개해 줬다. 카탈로그를 보고 동료들은 서양요리전집을 골랐지만 나는 사서오경전집을 골랐다. 같은 날 교회 목사님도 나와 동일한 책을 주문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주문한 책이 배달됐다. 사서오경전집은 논어, 맹자, 효경, 중용, 대학, 춘추좌전, 주역, 시경 등 12권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 책들은 단숨에 내 마음을 끌었다. 예전에 식모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천자문을 거의 다 떼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어린시절 불합리한 많은 일을 겪으며 가졌던 의문에 대한 답이 거기에 적혀 있었다. ‘인의예지신’을 근간으로 하는 가르침은 기독교인으로서 초기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내게 중요한 삶의 바탕이 됐다. 비록 초졸 여공이었지만 틈날 때마다 읽은 그 책들은 인간생활과 환경을 이해하는 힘을 갖게 해줬다.

“해영씨, 이곳을 떠나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거예요. 이별 선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물할 테니 이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도록 해요.”

일년이 좀 안 돼 용인에서의 생활을 접어야 했다. 공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 취직이 돼 송별인사를 하러 갔더니 사모님이 나를 예배당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사모님은 내게 여호수아 1장 5∼9절을 송별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내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해 주셨다.

“주님, 이 딸이 이제 이곳을 떠납니다. 어디를 가든지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두 손으로 만든 옷이 세계 최고의 옷이 되게 해 주시고, 이 기술로 다른 사람들을 돕게 해주옵소서. 또한 해영이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사모님의 기도를 들으며 나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딴 생각을 했다.

‘내가 만든 옷이 세계 최고의 옷이 된다고. 웃기는 말이군. 겨우 반제품을 만드는데 말이야. 또 이 편물기술로 다른 사람들을 도우라고. 사모님, 제 한 몸도 힘들단 말입니다. 이런 제가 누구를 도울 수 있다고!’

마지막 기도는 더 기가 막히고 우스웠다.

‘아니, 내가 무슨 하나님의 일꾼이 된다고. 교회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저러시는 걸까.’

당시 생각하기에는 매우 우스운 기도였지만 그동안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 주신 사모님의 기도이니 나는 그 기도 끝에 ‘아멘’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에 올린 기도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진리다. 내가 피식 웃으며 ‘아멘’했던 그 기도를 하늘 아버지는 ‘이런 발칙한 것’ 하며 소득 없이 이 땅에 돌려보내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나를 탓하는 대신 믿음으로 드리는 사모님의 기도를 받아주셨다. 사모님이 기도한 지 9년 만에 나는 보츠와나 선교사가 되면서 결국 사모님의 기도가 모두 이루어진 셈이 됐다. 그날 사모님의 기도는 이제 내 삶이자 기도가 됐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