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中企 인력난에 숨통] “정착 못해 자포자기… 이젠 새 일터에서 희망 일궈”

입력 2012-09-04 22:57


(2) 새로운 꿈을 꾸는 탈북청년

스물네 살 청년인 김민우(가명)씨는 “잘살고 싶다는 꿈 하나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일단 한국에만 오면 그 꿈은 쉽게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꿈도 멀어져 갔다. 벼랑 끝에서 그는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인 계명산업을 만났다. 과연 그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최근 경기도 화성 계명산업에서 만난 그는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하고 있었다. 옷에도 상당히 신경 쓴 모습이었다. 외모로만 보면 전혀 북한이탈주민 같지 않은 청년이었다.

그는 “월급 받으면 꾸미는 데 많은 돈을 쓴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원래 외모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탈북민에 대한 선입견이 있잖아요. 안 꾸미고 다니면 그런 시선으로 볼까 봐 신경이 쓰여요. 그래서 더 잘 입으려고 하고, 그러다보니 돈도 많이 써요. 1년 일해도 얼마 모으지도 못합니다.”

그는 이 사회에 동화되고 싶어했다. 탈북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가 머리를 염색하고 옷차림에 신경 쓰는 것도 탈북민처럼 보이지 않기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그는 부산에서 1년 동안 살기도 했다. 부산 사투리를 배우면 북한 사투리와 억양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 사회에 완전히 녹아들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동화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낭패감도 느꼈다.

한국에 와서 대학을 갔지만 적응이 힘들어 그만뒀다. 이곳저곳에 임시직으로 일해보기도 했지만 사람을 사귀기가 힘들고 생소한 문화에 적응을 못해 금방 그만둬야 했다. 김씨는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힘들었다”며 “면접까지 가도 결국 탈북민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채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계명산업은 그에게 다섯 번째 일자리이다. 그는 “이전에도 회사 자체는 좋았다. 친구 없이 혼자 지내니까 적응을 못했다”면서 “여기는 친구도 있고 회사 사람들도 너무 잘 대해준다”며 고마워했다.

계명산업은 탈북민들을 고용하고 있다. 그가 의지할 수 있는 탈북민 동료들이 있어 회사 생활을 하기가 한결 나았다.

김씨는 이곳에서 쇠를 절단하는 일을 한다. 공장은 쇳가루 때문에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고, 절단기 소음 때문에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질러야 간신히 들릴 정도로 시끄러웠다. 그는 하루에 10시간가량 소음과 씨름하며 일을 한다. 특근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쉬는 날은 이틀 정도에 불과하다. 남들이 다 기피하는 소위 3D업종이다. 그는 이곳 일이 힘들다고 했다. 다른 직원들처럼 하루 이틀 결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이곳을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가고 있다.

그는 “이제 나는 다섯 살”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5년, 새로 나이를 먹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한 살짜리였어요. 이제는 한국 문화나 생활에 대해 초등학생하고 이야기하면 딱 맞아요. 내가 습득력은 빠르지만 여러모로 수준은 초등학생인 거죠.”

탈북민에게 직장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탈북민들이 직장에 잘 적응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 130명이 일하는 계명산업에는 5명의 탈북민 직원이 있다. 모두 김씨 또래다. 계명산업은 지난해 829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건실한 회사다. 올해는 1000억원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희원 계명산업 관리구매팀 부장은 “직원을 구하려 해도 90%는 면접만 보고 간다”면서 “워낙 사람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탈북민들은 소중한 인력 자원”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북한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거나 민감한 부분은 못 건드리게 다른 직원들한테 신신당부를 한다”면서 “탈북민들은 사회주의 체제에 익숙해 동등한 대우를 받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 직원과 똑같이 대우해준다”고 말했다.

계명산업은 탈북민의 적응을 돕기 위해 ‘잡브라더’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새로운 직원이 오면 현장반장급 직원을 멘토로 붙여서 적응을 돕는다. 김 부장은 “중요한 건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성=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