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모두 용서하고 하나님께 맡겨라”… ‘배제와 포옹’
입력 2012-09-04 21:06
배제와 포용/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박세혁 옮김, 강영안 해설/IVP
책을 읽을 때의 긴장감은 책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볼프의 ‘배제와 포용’은 몇 구절을 읽자마자 곧바로 치열한 사유와 가슴 저림, 눈물마저 어른거리게 만드는 감동을 내게 주었다.
내 전공인 철학이나 정치사상의 영역에서는 이 책에서 다루는 폭력과 정의, 문화적 차이와 배제 및 극복, 숨어 계시는 하나님, 고통과 용서 등을 주제로 한 보다 읽기 쉬운 책들이 많이 출간돼 나와 있다. 볼프가 인용하기도 한 그런 책들 역시 감동과 치열한 사유를 촉발시켰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정교한 논리 전개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차원이 달랐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볼프는 마치 결론을 내리듯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정의를 확신하고 하나님의 임재로 마음을 굳게 하며 복수의 충동에 사로잡히기를 거부함으로써 폭력의 순환을 끊어야 한다. 원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면 결국 십자가에 달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보복하지 않는 값비싼 행동들은 오순절의 평화라는 연약한 열매가 자랄 수 있는 씨앗이 된다.”
이런 말은 그다지 새롭지 않은 결론처럼 들린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가 그런 말을 못하겠는가. 그 같은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사례도 얼마든지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발언은 볼프가 어떤 경험을 배경으로 이 책을 만들었는지 알면 곧 취소해야 할 것이다. 그는 폭력의 한가운데서 사유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에서 사람들이 강제수용소에 수감되고, 여성들이 강간당하며, 교회가 불타고, 도시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았다. 유고연방의 설립과 해체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과거 오스만 제국 하에 공존하던 다른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민족들 사이의 갈등과 상호 파괴가 ‘인종청소’의 양상으로까지 전개되던 바로 그곳이었다. 학생이 자신의 여선생님 입에 오줌을 누고 사정없이 구타하는 현실, 친한 친구의 아파트를 파괴하는 적군이 되어 자신의 선택이 불가피한 것이라 강변하는 현실. 저자 자신의 믿음마저 버릴 뻔하게 만든 신앙의 무력감을 느끼게 한 현실이 이 책의 배경이다.
그의 책은 철학, 문학, 정치사상의 영역에서 논의의 중심에 있는 거의 모든 학자들을 요리한다. 푸코나 들뢰즈와 같은 사상가들의 핵심 사상들이 적절히 인용되고 비판되는 것은 물론이고 롤스나 아이리스 영, 심지어 샹탈 무페의 중심 사상이 적절하게 논의된다. 그러니 정치사상에 용서라는 주제를 처음으로 도입한 아렌트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니 본회퍼는 물론이고 아스만의 최근 논의까지 가져와 종교 간의 정치적 문제까지 다루어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처럼 그는 현재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치열한 문제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이 시대의 첨예한 문제들을 아파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오롯이 내어 놓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상처 속에서 그에 대한 답을 추구한다. 그러기에 그의 글은 지성과 감성 모두를 전율케 하는 신앙고백으로 읽힌다. 그에 비해 이 땅의 우리들의 고민은 얼마나 협소한가. 하나님께서 가장 아파하실 시대의 문제는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우리의 시야는 좁아져 있고, 우리의 관심사는 물질과 세속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은가.
짐 월리스의 책들이 신앙인에게 현실을 보게 하는 매니페스토라면, 볼프의 ‘배제와 포용’은 크리스천 지성인들의 ‘지성’을 일깨울 양식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계를 우리의 영혼이 돌보게 하려면 이 책은 스스로 지성인이라 생각하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깊이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이다.
글=김선욱 교수 (숭실대 베어드학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