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해영 (3) 주님께 온 마음 드리니 가슴속 원망·증오가 싹∼

입력 2012-09-04 18:02


기술교육원에서 알선한 직장에 취직이 됐다. 식모에서 여공이 된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의 편물 하도급공장 일은 도급제로 자기가 일한 만큼 돈을 받았다. 종일 하는 강도 높은 노동은 척추장애인인 내게 죽을 맛이었다. 단순편물사여서 같은 모양의 옷을 계속 만드는데, 숙달될수록 속도가 나 편물기계로 짜는 옷의 매수가 늘어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허리가 안 좋은 나는 노동을 아무리 해도 남들처럼 매수가 늘어나지 않았다.

일을 할수록 늘어나는 것은 허리통증의 무게였고 내 눈물의 양이었다. 하루 노동이 끝나면 늘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정말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네’라며 절망하고 아파했다. 왜 이 세상은 이렇게 힘들고 아픈 것인가. 몸과 마음이 아팠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 무렵 나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친구가 돼 준다는 예수님을 만나려면 교회에 가야 한다고 했다. 힘들 때마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의 십자가 앞에서 혼자 앉아서 울며 날을 세곤 했다. 허리통증이 계속됐지만 새벽기도, 금요철야에 빠지지 않았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떠보면 주위에는 집사님이나 권사님들이 앉아 있곤 했다.

그들은 “아이고, 조그만 애가 기도도 잘하네”라며 기특해했다. 기도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저 울고 있을 뿐이었다. 몇 개월이 지나 손에 일이 익으면서 눈물의 기도는 감사의 기도로 바뀌었다.

‘하나님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는구나. 내가 아픈 것을 알아주시는구나.’ 기도를 하면 적어도 내 마음을 쏟아놓을 수 있어 혼자 괴로워하던 심적 고통이 줄어들었다. 만약 눈물이 인간을 치료한다는 말이 있다면 이 말은 맞는 말이다. 나는 많이 울었다. 그리고 눈물 끝에서 내 자신을 보았다. 거기 아주 불쌍하고 몸이 아픈 한 인간이 있었다. 해영이란 아이는 내가 봐도 가여웠다. 이 아이를 친구 삼아주신 예수님이 고마웠다.

예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나도 뭔가 드릴 게 있는지 돌아봤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가진 돈이나 힘이 없었고 배운 것도 전무했다. 예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래도 가진 것이 하나 있었다.

“예수님, 제가 드릴 것이라고는 마음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마음을 드리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스스로 두 가지 약속을 했다. ‘마음 아픈 일 안 하기’와 ‘죽을 만큼 열심히 사는 일’이다. 몸 아픈 사람이 마음까지 원망, 증오,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산다면 이것은 내게 매우 부당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죽고 싶은 마음도 뒤집었다.

어차피 하루를 살아야 한다면 죽을 만큼 살자. 그렇게 살다 죽으면 최소한 열심히 살았다는 말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아프다고 변명하지 말자. 나 혼자 살아야 한다고 불평하지 말자. 내가 여자로 태어나고 장애인이 된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후의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은 내게 있다.

이러한 생각은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매사 불평하는 태도나 부정적인 생각을 고쳐 나가게 했다. 그리고 항상 ‘참 고맙다’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도를 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공장의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돈을 함부로 썼다. 또 출근도 잘 하지 않고 꾀를 부리며 불성실한 경우가 많았다. 나는 몸이 아픈 데다 잘 어울리지 않다 보니 여공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됐다. 그러나 왕따가 됐다고 마음 아파하는 대신 책읽기와 공부에 집중했다. 공장의 편물기계에 영어단어를 붙여놓았고 월급을 받으면 서점으로 달려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을 읽고 있는 조그만 애를 주위 사람들은 특별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