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가치소비
입력 2012-09-04 18:38
마트에서 콩나물 한 봉지도 용량 대비 값을 따지고 치약 하나라도 ‘1+1’로 팔 때 미리 사두는 알뜰소비족들. 그런가하면 여유 시간에는 흔히 스파에서 피로를 풀고 고가의 피부미용실을 드나드는 이른바 럭셔리족도 있다.
전에는 알뜰소비족과 럭셔리족은 대비되는 그룹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이 둘이 마치 같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생필품 소비는 저가품 위주로 하는 반면 자신을 위한 보상과 투자에는 아낌없이 지출하겠다는 심리의 기묘한 조화, 이른바 가치소비의 등장이다.
가치소비는 절약과 사치의 상반된 욕망과 양면적 가치를 추구하는 셈이니 그야말로 포스트모던이 따로 없다. 기존 경제학에서는 소비수요와 관련해 주로 가격요인을 강조했을 뿐 기호(嗜好), 유행, 사회적 흐름 등 감성적·심리적인 동기는 거의 무시했다.
그런데 가치소비는 지금까지 중시하지 않았던 상징적이고 심리적인 만족감에 초점을 맞춘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부심을 자극하는 과시소비도 있으나 가치소비는 특별히 남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시소비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철저하게 실용적이며 자기만족적이다.
지금 소비자들은 생필품에서는 낮은 가격을 통해 실용적인 혜택을 추구하고 고가품 소비에서는 상징적이고 심리적인 만족을 기대한다. 생필품에 많은 돈 쓸 필요가 있겠나 하는 인식과 더불어 내가 원해서 좀 더 나은 서비스와 고가의 제품을 즐기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이른바 ‘자신감 소비족’의 탄생이다.
실제로 TV홈쇼핑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품목은 저가의 생필품과 고가의 건강·취미생활 관련 상품이라고 한다. 아주 싸거나 또는 매우 비싸거나 해야 많이 팔린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의 소비 트렌드조차 양극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 역시 가치소비로 설명이 가능하다.
최근 경기가 하강기미를 보이고 있어 가치소비는 더욱 깊숙이 우리 주변에 뿌리내릴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경기가 나빠지더라도 지금까지 해온 고급상품 소비경향을 일시에 바꿀 수는 없을 터다. 결국 그 대안은 선별적인 소비다. 불필요한 지출이나 충동적인 소비를 억제하는 한편 자신과 가족을 위한 고급품 지출은 최소한 유지하는 쪽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는데 우리의 정치상품 구매도 가치소비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은 정치상품 소비자의 임무이기도 하니까.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