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고, 찔리고, 성추행까지… 방문간호사들 ‘방문’ 열기 겁난다

입력 2012-09-03 22:02


방문간호사로 일한 지 4년째에 접어든 A씨는 지난 7월 업무 중 느닷없이 뺨을 맞았다. 뇌출혈로 8년째 누워 있던 환자가 평소처럼 혈압을 재려는 A씨에게 손을 휘둘렀다. A씨는 “정상이 아닌 환자에게 대응하기도 마땅치 않아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보건소에서 계약직 방문간호사로 근무하는 B씨는 지난해 일하던 도중 공황장애 환자가 휘두른 문구용 칼에 팔 부위를 찔렸다. B씨는 그 후 환자를 대할 때마다 또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생겨 이직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방문간호사 10명 중 7명이 환자로부터 폭언이나 폭행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방문간호사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 의료 취약계층을 직접 방문해 건강 상담 및 지도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최근 대한간호학회지에 실린 ‘보건소 방문보건인력들이 경험하는 폭력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방문보건인력 16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업무 중 1회 이상의 신체·언어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1158명(70.6%)이나 됐다.

이들 중 대부분은 환자들의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있었고 신체적 폭력을 당한 간호사도 적지 않았다. 일부 간호사는 목 졸림을 당하거나 발로 차였고, 심지어 환자에게 흉기로 찔린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폭력을 당하진 않았어도 간호사의 절반가량인 807명(49.2%)은 업무 중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업무 중 성희롱을 당한 간호사도 적지 않았다. 환자들이 음담패설을 했다고 응답한 간호사가 312명(19.0%)이었고 환자가 자신의 엉덩이나 가슴, 허벅지를 만졌다고 응답한 간호사도 99명(6.0%)이나 됐다.

하지만 이들이 폭력을 당해도 호소할 곳은 마땅치 않다. 폭력을 경험한 1158명 중 843명(72.8%)은 폭력에 대한 대비책 없이 속앓이만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소용없을 것 같아서’(21.2%), ‘업무상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해서’(18.3%)라고 밝혔다. 폭력 대처법을 교육 받기 원하는 대상자는 전체의 86.4%나 됐지만 실제 교육을 받은 사람은 22.4%에 불과했다. 방문간호사들이 이처럼 갖가지 폭력에 노출돼 있지만 이를 방지할 대책은 전혀 없어 스스로 참고 넘기는 수밖에 없다는 푸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는 전반적인 복지 서비스 및 시스템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령화로 인해 복지 분야 서비스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방문간호사나 사회복지사 등 관련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업무조건이 열악해 이런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방문간호사들의 불안한 고용상태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광옥 상명대 간호학과 교수는 “2인 1조로 방문한다면 긴급 상황에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지만 일부 시도에서는 방문간호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라며 “국가 차원의 처우 개선이나 정규직 전환으로 신분을 보장하는 등의 제도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