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中企 인력난에 숨통] (1) 탈북민 써보니…
입력 2012-09-03 18:50
채용 3년만에 ‘장벽’ 사라져… 새로운 상생모델로
지난달 24일 찾은 팩컴AAP는 잡지 마감 때문에 어느 때보다 분주한 모습이었다. 인쇄 전문업체인 이 회사는 잡지 등 책을 인쇄해 납품한다. 공장에는 제본 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책을 찍어내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직원들은 ‘이심전심’으로 척척 손발을 맞추며 일했다. 간간히 다른 억양이 섞인 대화도 오갔지만 어색해하는 직원은 없었다.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을 채용한 지 3년, 보이지 않는 장벽은 사라졌다.
처음부터 팩컴AAP가 탈북민 채용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김경수 대표가 이들을 채용키로 하고 알아보라고 지시했을 때도 이원성 관리본부 부장은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탈북민에 대해 잘 모르는 데다 막연한 거리감도 있어 ‘미지의 세계’와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한번 채용하고 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 이곳에 취업한 김미자(가명)씨부터 그랬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10년간 식당에서 숙식하며 일했던 그는 남다른 적극성과 적응력으로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깨뜨렸다. 회사는 단순 작업을 담당하던 그에게 생산라인 책임을 맡기는 파격적인 결정을 했다.
처음에는 “왜 굳이 탈북민을 채용하느냐”며 부정적이던 직원들도 이들의 성실함을 보고 하나둘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모두 13명의 탈북민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전체 직원 150명의 10분의 1 수준이다. 긍정적 평가에 비해 탈북민 직원 수가 많지 않은 것은 ‘깐깐하게’ 채용하기 때문이다.
탈북민 채용의 가장 큰 장점은 경쟁을 통한 조직 내 긴장감 형성이다. 탈북민들이 열심히 하면 기존 직원들도 위기감을 느껴서 더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팩컴AAP의 경우 모든 부서에 탈북민을 고루 배치해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또 탈북민을 채용하면 최대 2년까지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팩컴AAP는 탈북민과 기존 근로자 모든 대우를 동등하게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뽑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부장은 “그동안 200명 이상 면접을 봤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뽑아놓고 나면 보여주는 모습이 천지 차이이기 때문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면밀히 살펴본다”고 말했다.
윤형수(25·가명)씨는 한국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다가 이곳에 오게 됐다. 한국에 와서 사립 명문대를 졸업한 그는 한때 보험영업을 했다. 한국 사회에 닿는 연줄이 없어 보험 영업에 한계를 느끼고 “한국 사회를 더 배우자”는 심정으로 이곳에 오게 됐다. 그는 “일은 어디나 똑같더라. 결국 사람과 관계를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했다”면서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온실 속의 꽃’이었다. 지금은 야생에서 적응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1년 전 그를 이곳에 연결해준 오계순 중소기업중앙회 산업인력팀 전문위원은 “그때보다 표정도 훨씬 좋아지고 안정돼 보인다”고 흐뭇해했다.
윤씨는 앞으로 해외영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또 먼 미래에는 창업을 해서 자기 사업을 해보고 싶은 희망도 있다. 그는 “좋은 대학을 나와서 이런 데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아프다”면서 “하지만 먼 미래를 위해 이곳에서 경험을 쌓고 더 큰 꿈을 완성시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