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화학적 거세

입력 2012-09-03 18:38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1912∼54)은 24세 때 컴퓨터의 이론적 모델인 ‘튜링 기계’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1946년 훈장을 받고 51년 왕립학사원 회원이 됐다. 그러나 이듬해 동성연애 사실이 밝혀져 외설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영국 법상 동성애는 불법이었고, 동성애 성향은 약물치료를 받아야 하는 정신병이었다. 수감을 피하기 위해 그는 화학적 거세에 동의했다. 그러나 2년 뒤 42세 생일을 앞두고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 당국은 음독자살로 판정했지만 가족들은 사고사라고 주장했다. 2009년 이 문제가 다시 불거져 인터넷 캠페인이 벌어진 끝에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는 정부를 대표해 사과했다.

튜링의 죽음은 ‘사기’를 집필한 중국 전한시대 사마천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사마천은 흉노족에 항복한 장군 이릉을 변호하다 무제의 노여움을 사 외과적 거세인 궁형을 당했다. 그는 치욕스런 궁형을 자처해 사형을 면함으로써 역사서를 쓰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지켰다. 튜링이나 사마천 모두 당대의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사회적 지탄 속에 화학적 거세를 택한 튜링은 요절했고, 주군의 미움을 받아 물리적 거세를 당한 사마천은 사기 130권을 완성했으니 역사의 갈림이 선명하다.

인류사에서 거세는 연원이 매우 깊다. 선사시대부터 전쟁 포로를 거세하거나 패배자의 시신을 훼손한 사례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적지 않다. 국가체제가 정비된 이후에는 반역자 등을 처벌하는 수단으로 거세가 동원됐다.

남성 호르몬 분비 억제 약물을 투여해 성충동을 억제시키는 화학적 거세는 의료적으로는 1944년 처음 시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는 미국의 경우 1996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처음 입법화됐고, 유럽 여러 나라와 이스라엘 러시아 등에서도 입법이 이뤄졌다. 우리나라도 2010년 6월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통과돼 지난 5월 소아 성(性)기호증 진단을 받은 아동 성폭행범(45)에게 처음으로 화학적 거세 명령이 내려졌다.

최근 나주 사건을 비롯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잇따르면서 화학적 거세 대상을 확대하자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상습적이거나 극악한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아예 물리적 거세를 하자는 강경론도 나오고 있다. 피해자의 긴 여생에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남기는 아동 대상 성범죄는 튜링의 성적 성향 문제와 유가 다르다. 보복 차원이 아니라 확고한 재범 방지책이라면 화학적 거세가 비인도주의적이지만은 아닐 것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