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임순] 성교육은 어릴수록 효과적
입력 2012-09-03 18:53
최근 피임약의 의사 처방 필요 여부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었다. 피임약을 복용할 때 의사의 상담 후에 처방을 받고 사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소비자가 알아서 약국에서 구입해 사용해야 하는지를 놓고 공방을 벌인 것이다. 정부의 재분류 대상 의약품은 6000여개에 달하였지만, 그중 사회적 관심은 주로 응급피임약과 사전피임약의 분류문제에 있었다.
이를 놓고 의약계뿐만 아니라 여성계, 종교계, 시민단체까지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며 논쟁을 벌였다. 오죽했으면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직접 나서서 관련단체를 모아놓고 장시간의 토론을 했겠는가. 이 토론과정에서 각 단체의 의견과 주장이 엇갈렸으나 적극적인 피임교육, 성교육으로 피임문화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였다.
우리나라의 피임과 성문화는 세계의 다른 나라에 비해 특이하다고 하겠다. 피임이나 성이라는 용어는 은밀한 것이며, 성 관계를 할 때도 서로 알아서 피임을 하겠지 하면서 운에만 맡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런 가운데, 피임의 실패로 인한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곤란을 겪게 되고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은 바로 여성이다.
우리나라의 피임실천율은 80%로 높지만 낙태율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다. 효과가 확실하지 않은 날짜피임법 등을 적당히 사용하기 때문이다. 피임효과가 확실한 사전피임약 복용률이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30%선인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약 2%에 불과하다. 미국은 14.32%이고 뉴질랜드는 무려 40.59%에 이른다
피임약을 잘 복용하지 않는 이유는 ‘부작용이 있어 몸에 해로울까봐’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피임약을 장기 복용하면 불임이 될 수 있다, 기형아를 낳을 수 있다’라는 잘못된 상식도 많다. 피임을 제대로 한다면 여성건강에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과거로부터 잘못 알려져 오던 낡은 상식을 지금까지도 그대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성교육은 어린 나이에 시작할수록 잘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대학입학과 직결된 수능성적 올리기에 전념하고 있는 우리나라 학교현실에서 성교육은 시간을 배정 받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2010년 세계피임의 날을 맞아 25개국 15∼24세 52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피임 관련 인식과 행태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청소년 중 ‘활용 가능한 피임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6%에 불과했다. 세계 25개국 청소년들의 평균인 51%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다. 또한 성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54%는 성관계시 피임을 하지 않았다고 응답해 청소년들이 원치 않는 임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청소년들의 성 문화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피임교육, 성교육이 절실하다. 피임약 재분류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 동안 모두가 공감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피임교육 및 성교육’에 대해서 의약계 교육계 여성계 종교계 시민단체가 똘똘 뭉쳐 빨리 실행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정부가 앞장서야 함은 물론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피임교육과 성교육이다. 이런 교육이 선행되어야 피임약 또한 제대로 사용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한 낙태를 줄일 수 있다. 그래야 여성 건강을 지켜 계획된 임신으로 건강한 아이를 가질 수 있다.
이임순(순천향대 교수·산부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