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래서야 은행에 돈 맡기겠나

입력 2012-09-03 21:48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겼다’는 말은 딱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신한은행 직원들이 기업고객에게서 받은 신용평가수수료와 중도상환수수료를 제 주머니 속으로 횡령했다가 면직당한 사실이 국민일보 취재 결과 드러났다. 이들은 고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허위로 영수증까지 써주면서 적게는 40만원에서 최고 수천만원까지 챙겼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신한은행 서교동지점의 한 직원이 농협에 신한은행 계좌를 개설해 놓고 기업고객들의 각종 수수료 2억여원을 횡령했다가 적발된 뒤 본점이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밝혀지게 됐다. 신한은행은 감사원 감사 결과 학력에 따라 대출금리를 차별한 것으로 드러나 여론의 질타를 받았었다.

KB국민은행은 집단대출 서류조작으로 도마에 올랐다. 지난 7월 대출자 5명이 아파트 중도금 대출 서류가 조작된 것을 알고 경찰에 고소장을 냈을 때만 해도 국민은행 측은 직원의 단순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후 국민은행이 880여곳의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중도금 집단대출 서류를 1차 조사한 결과 대출서류 조작 건수가 최소 900건을 넘었다.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은 국민은행뿐만 아니라 IBK기업은행에서도 대출서류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20일에는 기업공시 정보를 사전 유출한 혐의로 수사받던 한국거래소 직원이 자살하기도 했다.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에 이어 굴비 엮듯 줄줄이 터져 나오는 금융권 비리를 보면 은행에 돈 맡기기가 불안하다. 금융기관은 신뢰를 생명으로 한다. 그런데 고객들이 맡긴 돈을 제 호주머니로 빼돌리고, 고객 몰래 대출서류 만기와 금액을 조작하거나 서명까지 위조하니 눈 똑바로 뜨고도 코 베이게 생겼다.

금융비리 피해액은 2006년 874억원에서 2010년 2736억원으로 4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고, 금융권 징계자 수는 올 들어 447명으로 지난해의 배를 넘었다. 은행들은 돈벌이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직원들에 대한 도덕 재무장과 철저한 내부 감사, 비리 직원에 대한 중징계 등을 통해 비리가 아예 싹틀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차제에 금융 당국은 전 은행을 대상으로 비리 사례가 없는지 조사에 나서야 한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이끌어가는 리딩뱅크들이다. 이런 우수 은행들에서 비리가 터졌다면 다른 은행들에서도 이 같은 비리가 관행처럼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높다. 금융권 비리가 증가하는 데는 금융감독 당국의 부실한 관리·감독과 솜방망이 처벌 영향도 크다. 제 식구 감싸기보다 엄중한 감독과, 유착 가능성이 적은 중립적 인사들의 중용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