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나의 평화를 주노라

입력 2012-09-03 18:14


요한복음 14장 27절

그 어느 때보다 ‘평화’가 애타게 그리워집니다. 일본과 독도문제로 한바탕 씨름을 하면서 동북아 평화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수재로 피해를 입은 북녘 동포들을 보면서 남북의 평화문제를 또 생각합니다.

평화! 세상의 평화는 몸이 건강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있을 때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평화는 깨어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되고 난 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두려워서 방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었습니다. 폭력이 난무하고 죽음으로 가득한 세상, 평화는 깨어져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시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전에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예수님의 평화는 로마의 평화, 세상의 평화와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상처 입은 자, 가난한 자, 의를 위해 고난 받는 자들에게 평화의 복음을 전하셨고, 십자가를 통해 참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평화는 힘이나 권력, 물질의 풍요를 통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나의 작은 것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평화라는 한자어를 풀어봅시다. 고루 평(平), 화할 화(和). 화(和)자는 벼 화(禾)자 옆에 입 구(口)자를 씁니다. 벼가 입에 고루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평화는 단지 전쟁 없는 조용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나눔을 통해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현대인들은 사랑의 나눔을 잊고 살아갑니다. 행사와 프로그램을 통해 큰 나눔을 계획하면서 오히려 작은 나눔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분주함 가운데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 애통해하는 마음을 느낄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어려운 산동네 사람들을 위해 몇 번 지역사회 봉사를 했더니, 구청에서 독거노인들과의 결연봉사에 참여해 달라고 하여 기꺼이 응답했습니다. 담당자가 바뀌더니 자꾸 물어옵니다. ‘교회이름이 뭐지요? 교단은요? 실례지만 교인은 몇 명이나 됩니까?’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작은 교회가 나눔 운동에 잘 참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나 봅니다. ‘나눔은 큰 교회가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의 방향성과 교우들의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대답하고 나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평화는 크고 거시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이루어 가야 합니다. 우리는 작아서 못하고, 약하기에 포기하고 늘 근심과 두려움 가운데 살고 있지 않나요? 내일의 많은 일들을 계획하느라 오늘 작은 섬김과 나눔을 잊고 살지 않나요? 다시 우리들의 선 자리를 확인합시다. 예수님의 평화는 사랑으로 나누며 작은 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곳에는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가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하신,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신, 그리하여 마음에 근심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그분의 평화를 나누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오늘도 나의 시간을, 물질을, 정성을 예수님의 평화를 이루는 곳에 사용합시다.

김성희 목사(독립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