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알맹이 없는 ‘백수’ 피해 확산
입력 2012-09-02 19:55
‘볼라벤’과 ‘덴빈’의 연이은 태풍으로 전남·북과 충남지역 논에서 알곡이 차지 않는 벼의 ‘백수(白穗)’ 피해가 심각하게 나타나 농민들의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백수현상은 벼가 이삭이 패는 때(출수기)에 크게 흔들릴 경우 이삭의 수분이 빠져나가고 잎이 하얗게 변한 뒤 말라죽는 증세다.
전남 해남군은우 벼 재배면적의 60%가 넘는 1만3000㏊에서 백수현상이 나타나 800억원이 넘는 피해가 예상된다고 2일 밝혔다. 이 가운데 3000ha는 90% 이상을 수확할 수 없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북일면 내동과 신월·갈두·사내 마을 들녘은 논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북일면 내동 차정출 이장은 “40년간 농사를 지었어도 이런 피해는 처음”이라면서 “1년 농사가 사흘간의 태풍으로 모두 헛것이 됐다”고 망연자실했다.
이 밖에 신안지역이 전체의 85%인 8400㏊를 비롯 함평 5571ha, 고흥 5129ha, 영광 2500ha 등에 피해가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진도군 지산면 농민 박모(60)씨는 “알곡이 절반도 안 차 완전 ‘맹탕’”이라며 “수확이고 뭐고 갈아엎고 싶은 마음뿐”이라며 허탈해했다.
전남도는 애초 이모작 면적인 20% 정도에서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보다 훨씬 심각하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전북에서도 김제, 부안, 고창 등 해안가 논에 백수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김제에서는 이날 현재 전체 벼 면적 2만1964㏊ 중 35%가 넘는 7800㏊에서 백수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쭉정이로 변한 벼는 늦게 모내기를 한 중만생종과 보리 수확 후 벼를 이앙한 2모작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 충남 태안군과 서산군 등 서해안 일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 큰 피해가 우려된다.
김제지역 농민들은 1일 진봉면 일대 농경지를 방문한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장관에게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며 피해 농가에 적절한 보상을 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벼 백수 피해는 태풍이 지나간 뒤 1주일 정도 지나야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피해 면적은 눈 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
김제=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