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엔 징역 3년 집유 5년 ‘정찰제 판결’… 판사들 “봐주는 판결 많았다”

입력 2012-09-03 00:43

“기업인에 대해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정찰제 판결’이라는 조롱 섞인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부산에서 열린 전국 형사법관포럼에서는 일부 기업인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에 대한 우려들이 표출됐다. 발제자로 나선 박형준 부산지법 판사는 “실제 판결사례를 보면 주요 기업인들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비율이 다른 범죄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기업·증권 범죄 등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법원의 양형과 일반인의 법 감정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포럼에 참석했던 한 형사합의부 판사는 “과거 경제 상황에서 기업인들에 대한 양형을 고려할 때 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중요하게 볼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었다”면서도 “현재 우리 사회는 그런 단계를 넘어섰다. 경제적 문제는 경제에 맡기고, 법원은 법리적 판단에 집중하는 양형적 스탠스를 가질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두산그룹의 박용오·박용성 전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등은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혹은 ‘그동안 경제에 기여한 바를 참작해서’라는 이유로 ‘정찰제 판결’의 수혜자가 됐다. 포럼에 참석했던 또 다른 판사는 “여론재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며 “여론을 예의주시하면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이원범 부장판사는 “뚜렷한 피해자가 있는 살인·강도 등의 강력범죄와 비교해 경제·금융 범죄 등에는 수많은 간접적·잠재적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며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보이지 않는 다수의 피해자들의 이해관계를 재판 결과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피고인의 입장에 치우친 양형을 해온 측면이 있다는 데 많은 판사들이 공감했다”고 토론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부장판사는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재판을 맡고있다.

현재 총수가 배임·횡령 등으로 재판을 진행 중이거나 준비 중인 기업들은 법원의 이러한 분위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달 16일 횡령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한화 김승연 회장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심을 준비 중이고, SK 최태원 회장은 횡령 등의 혐의로 1심 재판을 진행 중이다. 또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선종구 전 하이마크 회장 등의 재판도 진행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 총수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만 부각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여야는 주요 기업인에 대한 법원의 집행유예 판결을 막기 위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죄에 대한 법정형을 상향 조정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을 국회에서 추진 중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