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 조선족자치주 60년] 150여년간 곤고한 삶… 이젠 ‘자치주의 중국인’ 정착

입력 2012-09-02 22:47


<상> 옌볜조선족 어제와 오늘

우리 민족에게 옌볜(延邊)만큼 애환이 서린 곳이 있을까.

대기근을 피해, 일제의 탄압을 벗어나고자, 독립운동을 위해…. 지난 150여년 동안 시대 상황에 따라 국경을 넘어 이곳으로 이주한 이유는 달랐다. 하지만 이곳의 한민족은 운명처럼 곤고한 삶을 살아야 했다. 해방 이후에도 한반도에서나 중국에서나 변방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30일부터 사흘간 현지에서 만난 조선족들은 옌볜 조선족자치주 출범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있었다.

◇옌볜 조선족의 어제=옌볜 조선족의 첫 조상은 1860년대 대기근을 피해 먹고살기 위해 함경도 평안도 등지에서 두만강을 건너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로 두만강 유역 가까운 곳에서 농사를 지었다.

이 땅이 ‘간도(間島)’로 불린 것은 두만강에 있는 ‘사이섬’에서 유래했다. 옌볜해외문제연구소가 펴낸 ‘연변조선족역사화책(畵冊)’에 따르면 사이섬은 1870년대 후반 개간되면서 북한 지역 사람들이 ‘북간도’로 이주해가는 길목 역할을 했다. 당시 이 땅은 버려진 곳이었지만 우리 민족이 벼농사를 짓는 데 성공하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그 다음 세대에 국경을 넘은 사람들은 옌볜 일대가 아니라 헤이룽장(黑龍江)성이나 랴오닝(遼寧)성에 자리 잡게 된다. 국경에서 가까운 지린(吉林)성 일대는 이미 그들이 자리를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주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출신이다. 일제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된 뒤에는 독립투사들은 옌볜뿐 아니라 동북 3성을 무대로 항일투쟁을 벌였다.

◇동북 국경지대의 어엿한 주인=옌볜 조선족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 때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 중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자치주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조선족 인사는 “중국 정부가 옌볜 조선족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이 접경 지역을 안정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북한 정세에 직접 영향을 받는 이곳을 안보 측면에서 중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옌볜은 ‘예의의 고향’ ‘가무의 고향’ ‘교육의 고향’ 등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고유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동북지역에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동해 연안지방에 비해 낙후돼 있는 게 사실이다. 이제 옌볜은 창춘, 지린, 투먼을 잇는 창지투(長吉圖) 개발 등을 통해 한·중·일 동북아 3국이 경제협력을 이루는 터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달 전부터는 옌지와 평양을 잇는 직항로가 개설돼 주 2회 항공기가 오가고 있다. 그 전에는 북한에 가려면 베이징(北京)과 선양(瀋陽)을 거쳐야 했다. 옌볜이 대북 교류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서 10년 이상 지낸 한 대북 소식통은 “이곳 조선족이 통일의 매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옌볜=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