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기태] “읽으면 행복합니다”
입력 2012-09-02 18:28
서점에서 책을 어루만지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맑고 선량해 보인다. 스치기만 해도 진지한 삶의 향기가 물씬 풍길 듯하고, 절대로 대충 대충 살아갈 것 같지 않은 신뢰감도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책들이 빼곡한 서가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왠지 용돈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생기곤 한다. 바로 저 아이들이 자라서 이 나라를 이끌 때쯤이면 요즘 같은 혼탁함은 말끔히 갤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일 게다.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는 독서운동이 자주 있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반드시 필요한 운동이기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면서도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사람들은 분명 “결국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해 만들어졌다”(말라르메)거나 “책에는 모든 과거의 영혼이 가로누워 있다”(칼라일),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책읽기였다”(처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빌 게이츠)는 말들이 결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님을 공감한다.
아직도 이력서 취미난에 ‘독서’
하지만 대개는 과거완료형이다. 위인들도 현실에서 목표한 바를 이루기 전에는 결코 책을 읽는 일에 앞장서지 못했을 게다. CEO들은 책읽기를 강조하지만 샐러리맨들에게는 책을 붙들고 있을 여유가 거의 없는 모순의 악순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책이 중요한 매체라는 사실, 책 없이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음에도 책은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 문제다. 나아가 출판계와 독서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안고 있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독서는 일상적인 습관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력서의 취미난에 버젓이 ‘독서’라고 쓰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풍토에서는 자발적인 독서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21세기를 가리켜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책이 중심에 서는 시대’라고 한다면 어떨까. 물론 여기서 책이란 오늘날의 종이책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책이 품었던 수많은 지식과 정보, 그리고 예술적 성과가 담겨 있는 매체라면 그것의 형식에 관계없이 모두 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출판을 포함한 모든 문화시장이 거센 개방의 파고에 휩쓸리고 있다. 지구촌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문화상품의 국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 속에 담긴 내용이다. 유명한 외국상표를 달고 우리 정신과 문화가 세계 구석구석으로 팔려나간다면 그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상표임을 내세우지만 정작 그 속에 담긴 내용이 남의 것일 때 우리 문화는 점차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정신과 문화를 담아온 소중한 그릇이다. 선대의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책을 통해 한 나라 구성원으로서의 소임을 배우고 실천했으며,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그랬고 또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책의 존재를 잊고 사는 무리가 있다면, 그런 책의 무한가치를 등에 업고 오직 책을 팔아먹는 일에만 몰두하는 장사꾼들이 설치는 세상이라면 책은 더 이상 지고지순한 그 무엇이 아닐 게다.
문화시대는 책이 중심에 서야
요즈음 출판동네에서는 새로 출범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초대 원장의 낙하산식 임명을 둘러싸고 말이 많은 모양이다. 임명권자가 좋은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분이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꾸짖는 목소리만 내는 출판계도 그리 당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일러주고 싶다. “읽으면 행복합니다”라고.
김기태 세명대 교수 미디어창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