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맹경환] ‘따로따로’ 절전운동 이젠 그만
입력 2012-09-02 18:27
무던히도 더웠던 올여름, 특히 고생했던 사람들은 공무원이었던 것 같다. 전력 부족 상황에서 공무원부터 솔선수범해 에너지 절약에 나섰다. 에어컨이 꺼진 사무실에서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문제는 ‘정부 따로 국민 따로’였다는 점이다. 절전 캠페인은 계속됐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국민들이 많았다. 해마다 블랙아웃 우려 속에서도 국민들은 항상 “전기는 정부가 언제든지 공급해주겠지”라는 믿음이 있는 듯하다.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절실함도 없다.
이웃 일본은 상황이 달랐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여파로 올여름 54기의 원전 가운데 2기만 가동됐다. 전체 전력 공급의 30%가량을 담당하던 원전 없이 일본이 전력난을 어떻게 이겨낼지 전 세계는 주시했다. 의외로 일본의 전기는 남아돌았다. 기업들도 전기 절약에 나섰지만 특히 가정에서 전기 사용량을 지난해보다 12.4%나 줄였다고 한다.
원전 없이도 전력 사용에 여유가 생기자 일본에서는 ‘원전 제로’ 여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일본 정부가 에너지정책 공청회를 위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9.6%가 즉시 또는 단계적 ‘원전 제로’를 희망했다. 국민들만은 못하지만 국회의원 사이에서도 원전 제로 지지세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곧 새 중·장기 에너지정책을 발표한다. 2030년까지 ‘원전 제로’, ‘원전 축소’, ‘원전 유지’ 등 세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원전 축소라는 절충안이 유력하지만 최근 여론을 감안하면 ‘원전 제로’를 선언할 가능성도 높다.
원전옹호론자들은 원자력 발전이 처음 건설할 때 큰 돈이 들긴 하지만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보다 발전 단가가 낮다고 장점을 얘기한다.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도 원전 옹호의 중요한 근거다. 하지만 원전 사고에 따른 오염 제거와 오염 토지 보상, 원자로 폐쇄 등에 투입되는 비용을 감안하면 원전이 결코 경제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가장 확실한 근거다.
올 들어 벌써 7차례나 크고 작은 원전 사고가 잇따르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특히 전력 부족으로 원전을 쉼 없이 100% 가동하면서 앞으로 원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은 불안한데도 원전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기본 뼈대는 원자력 발전 비중을 발전량 기준으로 현재 36%에서 2030년 59%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정부는 “안전성만 강화하면 된다”며 축소는커녕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원전 건설을 통해 계속 전기를 공급해주겠다고 하고, 국민은 전기 아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는 사이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도 원전을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정부는 기술력을 앞세워 원전을 중요한 수출무기로 활용하겠다지만 지금 같은 추세라면 30년 뒤 원전 수출 시장 자체가 없어질지 모를 일이다.
재앙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미래를 위해 단계적으로 원전 가동을 중단할 테니 국민들도 전기 절약에 나서 달라고 호소한다면 많은 국민이 따르지 않을까. 최소한 지금처럼 ‘따로따로’ 절전운동은 아닐 것이다.
맹경환 경제부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