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앨리슨 래퍼

입력 2012-08-31 18:32

“장애는 신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그 상황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모든 것이 이뤄질 것이다.”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는 영국의 구족화가 겸 사진작가 앨리슨 래퍼가 2006년 4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말이다.

양팔이 없이 짧은 다리를 갖고 태어난 그는 생후 6주 만에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보호시설에서 성장했다. 비장애인들과 섞여 미술을 공부하고 학사학위를 딴 그는 22세에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2년 만에 이혼했다. 네 번의 유산 끝에 다섯 번째 임신했을 때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들을 출산해 위대한 어머니로서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래퍼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자신의 나신을 모델 삼아 조각 같은 영상을 만들어내며 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 토르소에 빗대 ‘현대의 비너스’라고 불렀다. 영국 조각가 마크 퀸이 2005년 9월 만삭인 래퍼를 모델로 조각한 ‘임신한 앨리슨 래퍼’ 작품을 트라팔가 광장에 전시하면서 래퍼는 더 유명해졌다.

30일(한국시간) 오전 개막된 2012 런던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서는 임신한 앨리슨 래퍼 석상을 가운데 놓고 공연이 펼쳐졌다. ‘초인(super human)들의 도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감동의 무대였다. 루게릭병으로 50년 동안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온 스티븐 호킹 박사는 개막식에서 “우리는 모두 다르고 표준 인간은 없다.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모든 사람에겐 특별한 성취를 이뤄낼 힘이 있다”며 “발을 내려다보지 말고 별을 올려다보라”고 했다.

선천성 기형으로 팔과 다리 없이 태어났지만 철봉, 달리기, 농구도 하며 스포츠 리포터, 초등학교 교사, 소설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저서 ‘오체불만족(五體不滿足)’에서 “장애는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 “팔과 다리가 없는 것은 자신만이 갖고 있는 장점, 특장(特長)”이라고 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묻지마 범죄’ 이면에는 나만 낙오자이고 외톨이라는 마음이 병든 사람들의 분노가 담겨 있다. 이들이 한번만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삶의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