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광자 한국생명의전화 이사] “대화 끈 끊겨 자살 귀 열고 함께 걸으며 사랑으로 막아야죠”
입력 2012-08-31 18:21
이화여대 이광자(64·정신간호학) 교수가 ‘한국생명의전화’와 인연을 맺은 건 1976년이다. 생명의전화가 국내 최초의 자살예방 상담단체로 첫발을 내디딘 해였다. 전화상담 봉사자로 시작한 이 교수는 그 뒤 36년간 상담원으로, 상담원 교육자로, 이제는 생명의전화 이사로 절망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 생명의전화를 통해 이 교수가 배운 건 경청과 공감의 중요성이었다.
그는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절대 죽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치솟는 국내 자살률은 들어주는 귀가 없는 불통의 한국 사회를 상징한다. 올해로 7년째를 맞는 생명의전화 자살예방 캠페인 ‘생명사랑 밤길걷기’(9월 7일) 행사를 앞두고 실무대회장인 이 교수를 29일 만나 자살 문제에 대해 들었다. 행사는 서울 대전 대구 광주 부산 전주 수원 7개 도시에서 열린다.
-2010년을 기준으로 한 해 1만5566명, 하루 4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가·사회적으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인데.
“한국인 자살에는 지극히 한국적인 특징이 있다. 서구 학계가 결코 이해 못하는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자살형태가 동반자살이다. ‘너’와 ‘나’는 분명히 별개인데 죽음을 함께한다는 것을 그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국내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하고, 낯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만나 함께 자살을 시도한다. 실은 ‘타살 후 자살’이 정확한 표현인데, 그걸 동반자살이라고 말한다. 가족을 하나로 보는 사고가 단어에도 드러난다. 죽음도 함께하는 이런 심리를 이해하려면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시선의 접근이 필요하다.”
-유명인 자살도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모방자살은 외국에도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특히 두드러진 게 아닌가 생각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목숨을 끊은 2009년 5월과 배우 최진실·이은주씨가 세상을 뜬 2008년 10월, 2005년 2월에는 정말 눈에 띄게 자살자가 급증했다. 2005∼2008년 주요 병원 응급실에 온 자살 시도자 2만7600여명을 분석한 최근 연구 결과가 있다. 당시 최진실씨 사망 전후로 자살 시도자 숫자가 인구 1만명당 63.6명에서 사건 1∼2주일 뒤 80.5∼82.7명으로 크게 늘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월별로 몇 십 명 수준이던 자살자 수가 노 전 대통령 사건이 일어난 달의 경우 전달에 비해 190여명으로 늘었다. 최씨의 경우 700여명, 이씨도 600명 가까이 모방자살을 불렀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정치·사회적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암시하는 징후는 많았다. 보도를 보면 잠도 못 자고 식사도 하지 못했다. 지지자들에게는 ‘나를 버리라’고도 말했다. 그게 전부 아주 위험한 자살 사인들이었다. 그런 신호를 보냈는데도 (전문가들이) 돕지를 못했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청와대에도 몸을 돌보는 주치의만 있고 마음을 관리해줄 정신과 전문의는 없지 않나. 한 나라를 다스린다는 스트레스가 대단히 클 텐데 그걸 도와줄 시스템이 없다.”
최근 한 정신과 전문의는 세미나에서 “전직 대통령의 명백한 자살 징후조차 개입하고 돕지 못하는 구조”라는 말로 국내 자살예방 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유명인 자살이 모방자살로 이어지는 건 공감인가, 아니면 슬픔의 표현인가.
“저 사람도 나와 비슷한 환경에 있었구나, 나처럼 고통스러웠구나, 공감하고 따라 죽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저런 사람도 죽는데 나는 어떻게 사나’ 쪽이 더 많을 거다. 나보다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을 훨씬 힘든 상황의 자신과 비교하는 거다. 사망 후 벌어지는 일련의 추모 분위기도 영향을 미칠 테고. 공인들은 자기 목숨이 자기 것이 아니다. 그걸 꼭 알아주면 좋겠다.”
-최근 학교폭력 때문에 일어난 일련의 아동·청소년 자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일종의 보복자살의 성격이 크다. 유서에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 이름을 쭉 적지 않았나. 도저히 혼자 해결 못하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죽음으로써 복수를 하는 거다. 아이러니한 것은 죽고 나니까 어른들이 움직인다는 거다. 살아서 나름의 방식으로 구조신호를 보냈을 때는 아무도 듣지 않더니, 죽고 나니까 언론이 떠들고 경찰이 들이닥쳐서 가해학생들을 처벌한다. 그걸 본 아이들은 학습을 한다. 내가 죽으면 어른들이 저렇게 복수를 해주겠구나. 그래서 또 다른 아이가 자살을 하는 거다.”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겠지만 당장 자살자를 줄이는 게 절실하다.
“우선 모방자살이나 추종자살 고위험군부터 챙겨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게 ‘6-6’이다. 부모, 형제, 친구 등 자살자 주변의 6명은 6주라는 심리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고비를 넘긴다. 그들은 ‘아, 그때 이렇게 말했더라면’ 하는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린다. 이게 ‘나도 따라가야겠다’는 자살충동으로 이어진다. 위험이 최고조에 이르는 게 사고 후 평균 6주간이다. 한 달 반이 지나면 산다. 상처를 안고서라도 사는 게 사람이다. 이 기간을 무사히 넘기도록 사회가 도와야 한다. 학생이라면 상담실, 성인은 지역 정신보건센터에서 개입해 그들에게 고통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국가적으로는 자살자가 발생했을 때 주위의 고위험군에 개입할 수 있는 지역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야 한다.”
-올해로 7년째 ‘생명사랑 밤길걷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자살예방을 위해 밤길을 걷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전 국민 생명사랑 축제이다. 밤길을 걷는다고 자살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다만 가족, 친구, 이웃이 함께 밤길을 걸으면서 각자의 속내에 대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각자의 상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살아있음이 소중하다는 것, 삶의 위기는 언제 어디서든 만난다는 것, 함께하면 상처가 작아진다는 것도 느끼게 될 거다. 그들이 사회 곳곳에 퍼져 자살예방의 메신저가 될 수 있다. 9월 7일 오후 6시30분 서울은 서울광장, 대전은 정부대전청사 광장 등에서 모인 뒤 7개 도시별로 5·10·34㎞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 걸을 수 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