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마른 밥은 달게 받을 줄 알지만…
입력 2012-08-31 17:57
예전 우리 가족이 서울 사당동에 살던 무렵, 아내는 한때 아이들에게 붉은색 고기를 매일 먹여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왜 그런가라고 물었더니, 막내가 다니던 유명한 소아과 의사가 철분 섭취를 위해 매일 붉은색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매일 소고기를 먹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더니 아내는 모르는 소리 말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조금이라도 매일 소고기를 식탁에 올리지 못한 엄마로서의 부주의를 자책하는 것이었다.
음식에 대한 오해와 편견
내 아내가 매일 소고기 반찬을 하든지 안 하든지 그건 그의 주권에 달려 있는 것이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가 채식만 하고도 육식을 했던 페르시아 청년들보다 더 건강했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한 아내가 그런 주장을 하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 인간은 본래 모순 덩어리인 게다. 그런데 얼마 전 신문 보도에 붉은색 고기를 매일 먹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기사가 나왔다.
나는 어떤 음식이 특별히 몸에 좋다는 견해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스트라스부르 유학 시절 한 번은 속이 안 좋아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프랑스인 의사는 나를 보더니 쌀을 자주 먹는 것은 안 좋으니 대신 빵을 먹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침 식사로만 바게트(baguette)를 먹으면 되지 점심과 저녁까지 굳이 빵을 챙겨 먹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있으면 밥을 규칙적으로 먹고 밀가루 음식은 가급적 피하라고 하지 않는가. 그 당시 스트라스부르에 잠시 유학 왔던 나의 대학 후배는 베이징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의 경험담을 말해 주었다. 소화가 잘 안 돼 의사를 찾았더니 중국 의사는 만두를 먹으면 소화가 잘된다고 권했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의사는 빵을 권하고 중국 의사는 만두를 처방하며 우리나라 의사는 밥을 주장하니 어떤 음식이 무조건 좋거나 나쁘다고 하는 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식습관
특정음식의 과용이나 결핍은 오히려 건강의 문제를 야기한다. 돌아가신 내 어머니는 살아계실 때 소금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줄여도 너무 줄인 것이 문제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병원의 처방전 중에는 소금이 있었다. 소금을 약봉지 싸듯 식사 쟁반에 담아 내오곤 했다. 왜 그러냐고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인체 내에 염분이 부족해서 소금을 따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내 아버지는 콜레스테롤을 두려워했다. 평소에 돼지고기는 물론, 새우나 오징어도 콜레스테롤 때문에 피했는데 피검사를 하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부족하곤 했다. 콜레스테롤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한동안 우울증 약을 복용해야 했다.
기독교적인 식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주어지는 대로 적당하게 골고루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다(딤전 4:4). 나는 굳은 밥이나 마른 빵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데 그것은 마른 음식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영적인 측면에서 유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른 것들을 입에 넣고 한참 동안 살살 씹으면 잡념이 사라지면서 음식이 소화액에 섞이고 있는 장면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마른 음식은 저작(咀嚼)의 집중을 도와주고 이런 집중을 통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사라지며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다. 내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꼬들꼬들한 밥 한 공기를 놓고 직접 실험해 보시라.
음식에 감사하는 법
나는 철이 들면서 기독교적 가치관 아래에서 음식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으나 마른 음식이라도 달게 받는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배우고 깨달은 것이다. 사막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에바그리오스가 남겨 놓은 수수께끼 같은 말 덕분이었다. 에바그리오스는 “보다 마른 음식을 규칙적으로 먹는 데에다가 사랑이 더해지면 수도자는 보다 빨리 평정(apatheia)의 항구로 인도 받는다”고 했다. 사막의 기독교인들은 올리브기름은 물론 신선한 채소류, 구하기 쉽지 않았으나 소금에 절인 생선도 먹었다. 탄수화물의 섭취는 주로 빵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사막의 특성상 일 년에 몇 차례 많은 빵을 구워 저장해두고 식사 때마다 물에 불려 먹었다. 저장된 빵은 건조한 기후 때문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는다. 아마도 ‘보다 마른 음식’이란 물에 불리되 덜 불린 빵이었을 것이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빵을 물에 덜 불린 상태로 규칙적으로 먹는 데다 사랑이 더해지면, 그 영혼은 보다 빨리 평화스러운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이 에바그리오스의 가르침이다. 마른 음식을 감사함으로 대하며 은근하게 씹어 먹는 것은 잡념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 여기에 사랑까지 더해지면 영혼은 필시 고요와 평화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요원하다. 여하한의 밥이라도 달게 받는 법 정도는 배웠으나 아직 사랑이 미치지 못하여 영혼이 동요하는 까닭이다. 나의 영혼은 탄식한다. 말라버린 밥을 감사함으로 받을 줄이야 알지만 어떻게 하여야 사랑에 이를 수 있을까(롬 7:24 참조).
<한영신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