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죄도 배상도 없는 일본 戰犯 기업들

입력 2012-08-30 18:43

101억 마르크 출연해 166만명에 머리 숙인 독일을 보라

경술국치 102주년을 맞은 어제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일본 전범 기업 가운데 현존하는 105개 기업 명단을 추가로 발표했다. 지난해 9월 발표된 136개와 지난 2월 58개를 합쳐 299개 기업이 확인된 셈이다.

이 가운데는 일본 3대 재벌로 알려진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계열 기업과 더불어 히타치중공업, 자동차 기업 닛산·마쓰다, 가전업체 파나소닉, 화장품 업체 가네보, 식음료 업체 기린과 모리나가 과자 등 우리에게 낯익은 기업이 많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강제동원에 사과 한 마디 없을 뿐더러 동원 사실 자체도 인정하지 않고 있어 피해자 배상 문제는 남의 일 보듯 하고 있다. 지명도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어 외양은 그럴 듯하지만 속으로는 이에 어울리는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사실이 새삼 확인된 셈이다.

일본 전범 기업들의 행태는 독일의 경우와 비교된다. 나치 치하에서 외국인들을 강제노역시켰던 독일 기업들은 여러 차례 범죄 행위를 시인하고 사죄했다. 2000년 8월에는 ‘기억, 책임 및 미래 재단’이라는 배상 단체가 연방법에 따라 설립돼 폭스바겐 지멘스 도이체방크 알리안츠를 비롯한 6500개 독일 기업이 독일 정부와 반분해 101억 마르크(약 7조8000억원)의 재원을 출연했다. 이 재단은 국제기구와 협력해 2001∼2007년 100여개국 166만명의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44억 유로(6조6000억원)의 배상을 했다. 재단은 이밖에 3억5880만 유로를 따로 떼어 전 세계의 과거사 조사와 인권 관련 활동 등에 사용토록 했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강제동원 배상에 관해 “평화와 화해로 가는 여정에 시급히 필요한 일이었다”면서 “이런 상징적 배상으로 수십년 동안 잊혀졌던 희생자들의 고통이 공개적으로 인식됐다”고 평가했다.

일본 전범 기업들은 독일을 거울 삼아 과거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어두운 과거사에 침묵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특히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스미토모금속 마쓰다 도시바 아사히맥주 같은 기업들이 과거사 왜곡 교과서를 발간하는 후소샤 출판사를 지원하는 등 우경 세력을 지원하는 것은 또 다른 역사적 범죄다.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던 숱한 자료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증거가 없다고 강변하는 일본 정계는 쾰러 대통령의 과거사 인식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정부는 2010년 특별법에 따라 총리 직속 위원회를 구성해 강제동원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국내 노역장에 끌려간 피해자 문제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아직 피해자 가운데 2만5000명이 살아있다고 하니 관련 규정을 마련해 보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또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히타치중공업이 정부조달협정에 따라 우리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수주했고, 방위사업청은 이들과 전략적 제휴를 검토하고 있다니 조속히 실태를 파악해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는 게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