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 고통은 아직도 ‘ON’… 역학조사 발표 그 후 1년

입력 2012-08-30 18:34


서울 구산동에 사는 박명수(가명·43·여)씨는 지난해 이맘때 잇따른 산모의 죽음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역학조사 결과 발표를 떠올리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되살아났다. 10년 전 첫째 딸(당시 5세)의 사인이 자신이 가습기에 넣은 살균제라는 생각은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박씨는 30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가습기 물때가 깨끗이 닦인다는 광고를 보고 산 살균제가 아이를 죽였다는 생각이 떠올라 고통스럽게 죽은 딸의 잔상을 계속 일깨우고 있다”면서 “가족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30대 초반의 김상호(가명)씨는 지난해 폐이식 수술을 받고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진 뒤 지난 2월 퇴원했다. 김씨는 “병원비가 건강보험 충당분을 제외하고도 2억3000만원이나 나왔다”면서 “허위 광고를 한 가습기 살균제 사용이 원인이라는 점이 명백한데도 정부와 기업이 아무 책임을 안 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가습기 살균제 역학조사 결과 발표 1년을 맞아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판매사 17곳을 31일 검찰에 고발한다. 가습기살균제피해대책시민위원회(대책위)와 환경운동연합 등은 옥시레킷벤키저, 이마트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판매사 17곳을 과실치사 혐의로 서울지검에 형사고발할 예정이라고 30일 밝혔다. 또한 가습기 피해자 26명은 해당 기업들에 대해 집단으로 손해배상 민사소송도 제기할 계획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가습기 살균제는 피해 대상이 불특정 다수이고, 드러나지 않은 피해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지금까지 공식 확인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가 34건(사망 10명)으로 지난해 말 공식 발표 때와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경보건시민연대는 피해 의심 사례가 174건(사망 52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심각한 피해의 원인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피해 보상은 피해자와 제조사 간 법적 소송을 통해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