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해외금융계좌 감시망 ‘구멍’

입력 2012-08-30 18:27

해외로 돈을 빼돌린 슈퍼리치(고액자산가)가 국세청 감시를 피할 수 있는 ‘꼼수’가 생겼다. 정부가 세법을 개정하면서 빈틈이 생겼기 때문이다. 해외에 10억원이 넘는 예금과 주식을 보유할 경우 신고토록 하는 국세청의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는 시행 2년 만에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놓였다.

30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 중인 세법 개정안에는 해외금융계좌 신고 기준이 ‘일별 잔액 합산’ 방식에서 ‘분기 말 잔액 합산’ 방식으로 변경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에는 1년 중 하루라도 해외금융계좌에 10억원 이상 예금·주식이 있을 경우 보유자는 국세청에 해당 계좌번호, 금융회사 이름, 실질소유자, 명의자 등을 신고해야 했다. 하지만 분기 말 잔액합산 방식으로 바뀌면 매분기 말 잔액이 10억원이 넘을 경우에만 신고하면 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법을 악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예를 들면 10억원이 넘는 예금을 스위스 계좌에 가지고 있더라도 분기 말일 직전에 잔고를 10억원 미만으로만 맞추면 국세청에 신고할 필요가 없다. 국세청 관계자는 “외국 금융기관에 거액을 보유한 슈퍼리치들이 통상 세무사, 회계사 등 전문가들의 도움을 상시로 받는 점을 고려하면 법의 허점을 이용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국세청은 뒤늦게 신고금액 기준을 낮추고, 미신고자 적발 시 징역형을 부과하는 등 제도 개선을 추진키로 했다. 또 올해 해외금융계좌 신고를 접수할 때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 신고액이 없었던 점을 감안해 이들 국가에 대한 조세협약과 정보교환 협정을 기재부에 요청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