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생모 찾아나선 입양아 슬픈 추억조각 맞춤

입력 2012-08-30 18:06


소설가 김연수(42·사진)의 신작 장편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자음과모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심연을 지향한다.

고등학생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생후 6개월에 미국 중산층 백인 가정에 입양돼 작가가 된 26세의 카밀라 포트만. 자신의 뿌리를 찾는 논픽션을 차기작으로 계약한 그녀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의 진남으로 건너온다. 카밀라가 가지고 있는 단서는 입양 당시의 기록과 낡은 사진, 편지 한 장뿐이지만 그 단서들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 조각을 맞추어간다.

수소문 끝에 진남여고에서 어렵사리 찾아낸 옛 졸업 앨범표지에 그려진 꽃이 자신이 가진 사진 속 동백꽃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은 카밀라는 자신의 영어 이름 또한 ‘동백’이라는 사실 앞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21세기의 풋풋한 20대다. “그런 무덤덤한 깨달음 앞에 어떤 나무가 붉은 것들을 잔뜩 매달고 서 있었다. 사과라고 해도, 어쩌면 홍등이라고도 부를 만한, 붉은 것들, 꽃들, 동백들.”(51쪽)

정작 생모 사진은 졸업 앨범에 없었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생모의 동창생은 이렇게 들려준다. “죽었으니까. 벌써 오래 전에. 1988년 6월, 카밀라가 태어난 그 다음해에.”(95쪽)

카밀라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도 들어보고 진남여고 도서반 문집에 실린 생모의 시와 수필까지 읽어보지만 관련자들의 엇갈린 기억과 증언들은 불협화음만 빚어낼 뿐이다. 그 불협화음의 수면 위로 생부의 존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지만 카밀라는 자신이 본 것과 들은 것을 믿지 않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201쪽)

이 독백이야말로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소설은 심연을 건너 타인에게 가닿을 수 있는 날개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관계에서 비롯될까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진남 사람들의 과거가 담긴 기억 파편을 주워 담아 스스로의 ‘아카이브’를 만들어가는 카밀라 포트만.

과연 2012년의 카밀라는 1980년대를 살다간 생모에게 건너갈 수 있을까. “가끔, 설명하기 곤란하지만 나의 말들이 심연을 건너 당신에게 가닿는 경우가 있다. 소설가는 그런 식으로 신비를 체험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신비를 체험한다.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작가의 말)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