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박선이] 그 날을 기다리며

입력 2012-08-30 17:29


근래 들어 몇 가지 일을 계기로 새삼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한 지인이 암 진단을 받은 영향이 컸다. 주변에서 누가 갑자기 떠나거나, 불치병을 선고받거나, 엄청난 자연재해가 닥치면 갑자기 긴장하며 하나님 앞에서 삶을 반성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무사안일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천성적으로 무디고 게으른 탓일까. 신앙이란 말 그대로 믿고 우러르는 것, 절대자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기에 엄청난 ‘빽’이 뒤에 있는 듯 편안하다. 그러나 부모님의 절대적 사랑과 보호에 의지한채 아무 생각 없이 뛰노는 아이 같아 문제다. 평안과 긴장 사이, 아이 같은 마음과 성숙함이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

얼마 전 ‘은퇴 저널’이라는 잡지에서 “50대에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하길래 나는 “자유”라고 대답했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매임이 없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는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준비해 온 인생 3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신적 자유를 진정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를 참 좋아하지만, 그 정도로 진리의 말씀을 깨달으려면 치열한 공부와 깊은 묵상을 쌓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분이 그랬듯 삶이 되어야 하고, 삶보다 앎이 앞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니 경계하며 조절해 가야 하는 어려운 길이다.

최근 좋은 스승을 발견했다. 이화여대와 감신대에서 종교철학을 가르친 김흥호 선생이시다. 이분은 어려서부터 품었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노장사상에서 서양철학까지 공부하셨다. 그가 쓴 ‘요한복음 강해서’를 읽었는데, 동·서양의 사상에 통달한 넓은 시야로 바라보니 내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 같았다.

동양사상과 기독교의 차이는 자력과 타력의 차이요, 동양은 고행을 통하고, 기독교는 믿음을 통한다. 고행은 들어가기는 쉬우나 깨닫기가 어렵고, 믿음은 들어가기는 어려운데 깨닫기는 쉽다고 하셨다. 내가 도달하고 싶으나 참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지,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의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말씀에 대해 결코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고 하니 적잖이 안심이 된다. 그날이 언제일까. 게으름을 떨쳐버리고 마음을 새롭게하며 그때를 기대해본다.

박선이 (해와나무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