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돈 유치해봤자 굴릴 곳도 없고…” 씨마른 시중銀 예·적금 신상품

입력 2012-08-30 13:11


4년차 직장인 유광식(30)씨는 최근 은행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렸다. 입사 초인 2009년 가입한 적금이 만기돼 새로 적금을 들려 했지만 대부분 상품 금리가 4%도 되지 않는 데다 특판 적금상품은 눈 씻고 봐도 찾기 어려웠다.

유씨는 “3년 전에는 고금리를 주는 특판 상품도 많았고 이벤트성 예금상품도 다양해 고르기만 하면 됐었는데 올해는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마땅한 게 없다”고 했다.

시중은행의 저축상품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고금리 혜택을 주던 특판 상품은 아예 ‘멸종’ 수준이다. 예금을 받아도 마땅히 돈을 굴릴 곳이 없다 보니 은행들은 고객 돈을 빨아들일 신규 예·적금 상품 출시를 등한시한다. 주식 거래금액 급감, 부동산 거래량 추락 등 자산시장에 불어 닥친 한파가 예·적금통장까지 꽁꽁 얼려버린 것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은 지난달 초 이후 두 달 가까이 정기 예·적금 신규상품을 출시하지 않고 있다. 하나은행은 현재 판매 중인 상품 가운데 올해 출시한 상품은 2개뿐이다.

다른 은행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예·적금 신규 상품을 내놓고는 있지만 마지못해 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통상 한 달에 한 번꼴이던 신규 상품 출시 속도는 2∼3개월에 겨우 한 번꼴로 눈에 띄게 느려졌다.

은행들이 예금 받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기준 국내 예금은행의 원화 수신액은 976조9387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9조1373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말 수신액이 지난해 6월에 비해 44조4052억원 증가한 것과 비교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예·적금 상품이 씨가 마르는 가장 큰 이유는 은행들이 금고에 가득 찬 돈을 굴릴 곳이 없다는 데 있다. 투자를 해서 돈을 맡긴 고객에게 줘야 하는 예금 이자를 빼고도 수익을 올려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올해 예금은행 원화잔고는 10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지만 증시, 부동산 등 각종 투자처는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전국 주택 매매거래는 40만799건으로 전년 동기(57만3999건)보다 30.2% 줄었다. 올 1월부터 지난달까지 주식거래 대금은 1045조222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05조5027억원)보다 19.9% 감소했다.

여기에다 금융감독원이 은행 예·적금 상품의 약관승인을 까다롭게 하고 있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저축은행 사태 이후 ‘소비자 보호’를 이유로 수신내용과 금리, 혜택은 물론 상품명까지 세밀하게 따지고 있다.

시중은행 상품담당 본부장은 “호황이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수신 상품을 새로 내놓을 의지나 여력이 많지 않다”면서 “이미 수신액이 가득 찬 데다 신상품 아이디어까지 마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