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두다리 잃은 전 F1챔프, 세바퀴로 ‘휴먼드라마’ 엮는다… 핸드사이클 출전 이탈리아 자나르디
입력 2012-08-29 18:43
2012 런던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로드)에 출전하는 알렉스 자나르디(45·이탈리아). 그는 레이스가 펼쳐질 영국 켄트 브랜즈 해치 모터스포츠 서킷을 손금 보듯 훤하게 꿰고 있다. ‘포뮬러(F) 1’ 드라이버 시절 달려봤기 때문이다. 궁금해지는 한 가지. 그는 왜 괴물 같은 ‘포뮬러 머신’이 아니라 핸드 사이클(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인 경기에 사용되는 사이클)을 타고 서킷을 질주하게 됐을까?
지난 2001년 9월 15일(현지시간) 독일 라우시츠 유로스피드웨이의 챔프카(CART) 그랑프리. 1998, 1999년 챔프카 세계 챔피언인 자나르디는 12바퀴를 남기고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 찾아온 지긋지긋한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아차! 바퀴가 미끄러지며 차가 멈췄다. 차체를 바로잡고 다시 출발하려던 순간이었다. 굉음을 내며 시속 300㎞로 뒤따라오던 차가 그를 덮쳤다. 자나르디의 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로로 구겨졌다.
“그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자나르디는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내 몸에 피가 1ℓ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의사들은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연구 대상이라고 했지요.”
자나르디가 사고 후 자신에게 던진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두 다리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어떻게 하지?” 좌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20개월이 지난 2003년 5월 손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차를 타고 다시 레이스를 시작했다. 투어링카 레이스에 꾸준히 참가한 그는 마침내 2005년 월드 투어링카 챔피언십(WTCC)의 BMW 팀에 합류했다. 그해 14번째 경기에선 사고 후 처음으로 우승까지 했다. 2006년엔 F1머신을 다시 몰기도 했다.
BMW 320i 투어링카를 몰며 WTCC에서 활약하던 그는 2009년 인생 코스를 변경했다. 레이싱계에서 은퇴한 뒤 핸드 사이클링 마라톤에 매진한 것. 그는 남다른 열정으로 2010년 3월 로마대회에 이어 2011년엔 뉴욕대회마저 제패했다.
자나르디는 단순히 재기에 성공한 장애인이 아니다. 그는 사고 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마다가스카르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등 활발한 사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두 권의 자서전을 펴내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런던 패럴림픽에서 세 바퀴로 다시 한번 ‘휴먼 드라마’를 연출하려는 자나르디. 그는 두 다리가 없는 삶이 힘겹지만 굴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고는 내 인생의 어떤 부분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
김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