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 124]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

입력 2012-08-29 18:25

아시는 것처럼 느헤미야는 주전 450년 경 바사왕의 임명을 받고 팔레스틴 재건을 위해 군사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전 재건과 정치개혁을 단행한 인물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느헤미야에 대해 우호적으로 해석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팔레스틴에 도착하여 주민분리 정책을 시행합니다. 그것은 바벨론에서 귀환한 엘리트 민족주의자들과, 주전 586년에 유다가 멸망하면서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어서 본토에 남아 야훼 종교의 뿌리를 지키면서 사마리아를 생활의 거점으로 삼아온 평민 및 호족들을 갈등 관계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팔레스틴을 통치하는데 유용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로 말미암아 설정된 분리주의 정책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갈등과 대적은 예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근 500년 간 지속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국에 대한 정책을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분할통치 정책입니다.

1차 세계대전 무렵, 대영제국은 다신론을 믿는 힌두와 유일신을 믿는 무슬림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영국령 인도를 통치했습니다. 이 또한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이었습니다. 1800년대는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를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를 위해 전쟁을 벌인 ‘식민지 전쟁시대’입니다. 인도를 대영제국이 먹을 즈음, 프랑스는 시리아를 통치합니다. 이때도 프랑스는 종파 간 갈등을 유도합니다.

이슬람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후에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 하는 싸움으로 두 쪽으로 갈라졌습니다. 그게 요즘 우리가 흔히 듣는, 수니파와 시아파인 것입니다. 그런데 프랑스가 시리아를 통치할 그때 수니파와 시아파가 양분되어 있었고, 수니파는 프랑스의 식민지 통치를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프랑스는 시아파를 그들의 편으로 삼아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중요한 자리에 시아파를 앉힙니다. 시리아가 1946년 독립을 할 때 권력을 장악한 게 시아파입니다. 그 후로 내내 지금까지, 시리아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속에 있는 겁니다.

지금, 시리아의 내전은 그렇게 시작된 제국주의의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 정책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전 500년경 느헤미야에서 비롯된 팔레스틴 분리주의 정책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대적관계와 시리아 내전은 다르지 않습니다.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