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낙타행렬 파고드는 사막의 애수… ‘문명이 멈춘 곳’ 中 닝샤자치구 인촨시 일대
입력 2012-08-29 21:32
햇빛은 사막의 속살까지 말려버릴 듯 맹렬했지만, 끝없이 펼쳐진 금빛 모래 바닥과 아득한 지평선,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하늘은 그야말로 자연의 선물이었다. 중국 닝샤(寧夏)후이족자치구의 주도(主都) 인촨(銀川)시는 한국인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으로, 사막뿐 아니라 선사시대의 유물, 명나라 때 축조된 만리장성, 미지의 제국 서하왕국의 흔적까지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저가 항공업체인 진에어가 지난 3월부터 주 2회 정기운항을 시작했다.
먼저 소개할 곳은 중국 5대 사막 중 하나이자 5A급 관광지인 사포터우(沙波頭)다. 1738년 발생한 지진으로 만들어진 사막언덕인데 인촨시에서 180㎞가량 떨어져 있다. 자칫 지루할법한 사막 곳곳에는 쏠쏠한 재밋거리가 숨어있다. 일단 ‘탈 것’들이 있다. 그 중 일품은 낙타다. 낙타를 타고 사막 능선을 따라 가면서 사막의 낭만을 감상할 수 있다.
우람한 크기의 관람차도 반갑다. 사방이 휑하니 뚫린 트럭 비슷한 차는 15명을 거뜬히 태우고 사막 한 가운데를 굉음을 내며 달린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스피드와 사막의 굴곡을 느낄 수 있다. 200m 길이의 모래썰매 역시 빠뜨릴 수 없다. 사막과 인접해 있는 황하에서는 양 몸통을 엮은 뗏목으로 유속을 즐길 수 있다. 열기구, 번지점프 등도 있지만 체험하려면 꽤 많은 여비가 들어간다. 중국이라도 5A급 입장권은 대략 2만∼3만원 선이며, 이용시설도 이와 비슷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인촨시내에서 서쪽으로 35㎞ 거리에 위치한 서하(西夏)왕릉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시야에 꽉 차게 들어오는 53㎢ 규모의 능원에 ‘헉’소리가 절로 나지만 어떠한 복원 없이 자연 그대로 유지된 왕릉의 상태를 보면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원래 서하왕조의 9개 제릉과 254개 배장무덤이 있었으나, 200년간 황금기를 구가했던 서하가 몽골에 의해 멸망되는 과정에서 이 능원도 대부분 소실됐다. 하지만 1038년 서하왕조를 세운 이원호(李元昊)의 피라미드형 흙무덤(직경 36m, 높이 24m)만은 완벽히 보존돼 있다. 재밌는 사실은 중국이 1988년 주요 문화재로 지정하기 전까지 왕릉이란 것을 몰랐다는 데 있다. 왕릉 곳곳에 눈에 띌 정도로 남아있는 군사훈련의 대포·총알 자국이 증거라고 한다.
인촨에는 중국 전체에 100여곳 존재하는 5A급 관광지가 두 군데나 더 있다. 중국 영화 ‘붉은 수수밭’, 한국 드라마와 영화인 ‘선덕여왕’ ‘놈놈놈’ 등의 촬영지인 서부영화세트장은 1993년 오픈해 ‘동방의 할리우드’로 불린다. 인촨시 옛 거리가 인상적이며, 명나라와 청나라 두 성(城)을 재연해 놨다. 바람에 날아간 모래가 호수 한가운데 쌓여 사막을 이룬 사호(沙胡)도 특별하다. 30∼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나무배를 30분가량 타고 들어가면 사막과 호수, 갈대밭과 새들이 어우러진 특이한 광경을 맞이하게 된다. 이곳에선 ‘화장실, 매표소, 구루마 지역’ 등 한국어 표지판도 쉽게 발견된다.
이밖에도 중국 구석기 시대 유적지인 수동구(水洞溝)에는 500년 전 명나라 때의 만리장성 일부가 남아있다. 그마저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6m 높이의 흙 성곽은 3m도 채 되지 않는 높이로 내려앉긴 했다. 또한 1만년 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해발고도 3750m의 허란(賀蘭)산 암벽화는 계곡, 하늘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고대 인류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태양신과 여가생활로 그려놓은 당나귀, 사람 얼굴 등의 기록이 암석에 새겨져 있어 유목민족의 갤러리로도 불린다.
여행 전 미리 알아둬야 할 팁은 인촨이 생소한 여행지인 만큼 음식, 언어 등 불편한 점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후이족이 닝샤자치구 전체 인구(약 620만)의 30%가량이라 돼지고기를 파는 곳이 거의 전무하고, 한국 음식점도 달랑 세 곳에 불과하다. 중국 음식에 익숙하지 않다면 주문 전 향신료를 빼달라고 주문해야 한다. 물가는 중국 평균보다 1.5배 정도 비싸다고 보면 된다. 풍부한 석탄 등으로 부유층이 많아짐에 따라 국가 차원에서 화폐가치를 떨어뜨렸다는 게 현지인의 설명이다. 또 여행 시기를 정할 때엔 황사도 고려해야 한다. 2, 3월엔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
인촨(중국)=글·사진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