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실명제, 결국 ‘失名’… 의사단체 극심한 반발로 무산
입력 2012-08-28 21:19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 권고에 따라 올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추진돼왔던 ‘의사실명제’가 의사단체들의 극심한 반발로 무산됐다. 의사실명제란 병·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료급여(보험금)를 신청할 때 의사 이름을 기재하는 제도. 시행되면 대형병원의 의사 1인당 진료건수 및 의료행위가 처음 공개된다. 현재는 병원장 이름만 적는 병원별 신청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8일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라는 권익위 권고에 따라 의사실명제 도입을 논의해왔으나 병·의원, 의사, 시민단체 등의 이해가 달라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현재로서는 언제 시행될지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해부터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시민단체 등과 함께 4∼5차례 회의를 가져왔으나 최근 결론 없이 중단됐다.
의사실명제가 좌초됨에 따라 10년 넘게 논의돼온 병원의 차등수가제 역시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됐다. 2001년 의원 및 약국에 먼저 도입된 차등수가제는 의사(혹은 약사)의 1인당 적정진료건수(75건)를 넘긴 경우 100건까지는 보험수가의 90%, 100∼150건 75%, 150건 이상은 50%만 지급하는 제도이다. 차등수가제의 건강보험 재정 절감 효과는 이미 확인됐다. 2009년 상반기 기준, 차등수가 적용으로 약 800억원(총 진료비의 1.2%)의 보험재정을 절약했다.
재정절감만이 아니라 의료의 질 관리 차원에서도 차등수가제를 병원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2∼3시간 대기, 2∼3분 진료’가 허다할 만큼 대형병원 환자 집중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우려와 비판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진료할수록 환자 당 수입이 줄어들도록 수가를 차등화하면 의사 1인당 환자 숫자를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전제는 의사실명제이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팀장은 “두 제도가 도입됐더라면 컨베이어벨트에 떠밀리듯 질문 한번 제대로 못하는 대형병원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다만 “(의사실명제는) 중요한 정책이니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견을 조율해 계속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