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2년] 인간존엄 짓밟아 놓고… 日 반성커녕 망언수위 더 높여
입력 2012-08-28 18:30
29일은 일제가 대한제국 통치권을 빼앗고 강제병합한 지 102년째 되는 날이다. 1945년 광복으로 1910년 한·일강제병합을 뜻하는 ‘경술국치(庚戌國恥)’는 법적으로 무효가 됐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강제 징용 등 일제 36년 동안 우리 국민의 존엄성을 짓밟은 데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합당한 배상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는 30일이면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사태 해결을 촉구한 지 1년이 된다. 헌재는 1년 전 피해자들이 모두 고령이어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경우 인간 존엄 회복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가해자 일본은 해결 노력을 하기는커녕 최근 고위 관료들의 잇단 망언에서 보듯 책임 회피에 골몰하고 있다. 정부의 대일(對日)압박과 외교노력이 더욱 절실한 때라는 지적이다.
◇‘적반하장’ 일본=지난 3월 일본은 은밀히 경제적 보상 내용을 담은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을 우리 측에 제시했다. 하지만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우리 정부 답변을 들은 뒤 일본은 사실상 대화 창구의 문을 닫았다. 또 지난해 헌재 결정에 따라 우리 정부가 9월과 11월 두 차례 외교공한으로 공식적인 양자 협의를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무시하고 있다.
이달 들어 독도 문제로 갈등이 심각해지자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를 위시해 일본 고위 관료들은 ‘고노 담화’에서 더 뒤로 물러서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28일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에서 위안부 문제 사과 부분을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정치인들이 이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발언을 하면서 고노 담화의 진정성마저 희석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28일 브리핑에서 “과거 사과와 반성을 무효화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정부, ‘중재 카드’ 아껴 쓴다=정부는 지난 1년간 200여 차례나 일본 측 인사를 면담하며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해 12월 교토 정상회담, 지난 5월 베이징에서의 한·일 양자 정상회담에서 얘기했고 외교장관 차원에서도 3차례 정도 일본 측에 얘기했다”며 “여기에 차관, 주일대사 등 각 외교채널과 레벨별로 많은 접촉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지난 7월 신각수 주일대사를 통한 ‘최후통첩’마저 일본의 거부로 무산된 상황인 만큼 이제는 물밑접촉보다는 정공법으로 나설 계획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혔듯이 일본군 위안부는 보편적 여성인권 문제인 만큼 국제사회에서 일본에 대한 압박도 강화키로 했다.
헌재 결정에 따라 일본에 중재위원회 구성을 제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일본이 거부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이를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정부는 주도면밀히 그 시기를 보고 있다. 헌재는 지난해 8월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배상 문제의 해결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위헌이라며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명시된 중재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헌재 결정이기 때문에 중재 회부는 법적 의무사항”이라며 “언제가 효과적일지 여러 요인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다 정권이 지지율이 낮은 데다 선거를 앞두고 있어 위안부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