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는 스위스계좌… 2012년 신고액 14배 늘어난 1003억
입력 2012-08-28 18:21
국내 용역업체 사장 A씨는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해외 조세피난처 한 곳에 이름만 있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 운용하는 업체로부터 나오는 수익을 모두 페이퍼컴퍼니로 보내 세탁을 한 뒤 스위스에 별도로 만든 본인 은행계좌로 빼돌렸다.
A씨는 이 돈으로 부동산과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는 등 호화생활을 누렸다. 2006년부터 막대한 세금을 탈루해 왔던 A씨는 올해 초 국세청에 덜미가 잡혔다. 국새청은 해외금융계좌 미신고 과태료 1200만원을 부과하고, 세금 33억원을 추징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국내 자산가들의 ‘스위스 비밀계좌’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스위스 은행에 개설한 비밀계좌에 보관 중인 돈이라며 신고한 금액은 전년보다 14배 가까이 늘어났다. 전체 해외금융계좌 신고금액은 19조원에 육박했다.
국세청은 올해 해외금융계좌 신고자가 총 652명, 신고금액은 18조6000억원이라고 28일 밝혔다. 지난해보다 신고자는 24.2%, 신고금액은 61.8% 증가했다. 개인의 경우 302명이 2조1000억원을, 법인은 350곳이 16조5000억원을 신고했다. 해외금융계좌 자진신고는 매년 6월 1일부터 한 달 동안 한 차례만 받는다.
특히 ‘검은돈 집합소’로 알려진 스위스 비밀계좌 신고금액이 급증했다. 스위스 계좌의 신고금액은 지난해 73억원에서 올해 1003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달 25일 우리나라와 스위스가 맺은 조세조약이 발효돼 탈세조사 가능성이 열리자 고액 자산가들이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스위스 계좌 신고금액이 아직 금액 기준으로 4위에 그쳐 미신고 계좌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세청은 신고자에 대해서는 비밀을 보장하고 소명 요구 등 세무간섭을 최소화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역외탈세 조사를 강화한 데다 스위스 조세정보에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스위스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고액 자산가들이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금융계좌 자진 신고금액을 국가별로 보면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9188억원)이다. 미국(5680억원), 싱가포르(1465억원)가 뒤를 이었다. 예·적금이 94.5%로 가장 많고, 주식은 2.8%였다. 금액으로는 주식(49.4%)과 예·적금(48.9%)이 비슷했다.
국세청은 정보교환 자료, 외국환 거래자료 분석으로 해외금융계좌를 신고하지 않은 혐의자 41명을 선정해 기획점검에 들어갔다. 지난해에는 해외금융계좌 미신고자 43명을 적발해 과태료 19억원을 부과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정보수집 역량을 강화하고 해외금융계좌 관련정보를 면밀히 분석해 재산은닉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해 과세하겠다”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