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근혜 방문 거부한 전태일 열사 유족들
입력 2012-08-28 18:12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인 1970년 11월 13일. 22세 청년 전태일이 서울 청계천변 평화시장 부근에서 수백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다 분신자살한 날이다. 그는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쳤다. 어린 소녀들이 햇빛을 보지 못한 채 하루에 15∼16시간씩 중노동을 하면서도 박봉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근로환경 개선을 끊임없이 요구했으나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한 정부와 회사에 분신으로 항거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노동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어제 서울 종로에 있는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려다 유족들의 거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유족과 쌍용자동차 기륭전자 노조원 등 수십명이 전태일 재단으로 통하는 골목길을 막았다. 박 후보는 재단 방문을 포기하고 청계천6가 ‘전태일 다리’로 가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전태일 열사 유족들이 박 후보 방문을 거절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동생 전태삼씨는 “박근혜 의원의 방문 자체가 너무 일방적이어서 맞이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했다. 사전에 충분한 협의 절차 없이 찾아오겠다고 해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는 얘기다. 전씨는 또 “시급한 것은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죽음이 있는 대한문 분향소부터 방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를 비롯해 노동 현안들 해결에 나서줄 것을 촉구한 것이다. 역시 동생이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번인 전순옥 의원은 “5·16쿠데타와 유신, 군사독재에서 정수장학회까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면 지금의 말과 행동은 그 진실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후보가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져야 하며, 박정희 정권 당시 핍박받은 이들에 대한 사과 등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유족들은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조건을 제시하며 박 후보 방문을 수용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이미 40년 넘게 세월이 흘렀다. 박 후보가 아무리 밉더라도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고 화해하려는 박 후보를 문전박대한 것은 부적절했다. 박 후보가 전태일 동상 앞에 놓은 국화 꽃다발을 발길로 차버린 노조원들의 행위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박 후보가 전태일 재단 방문을 계획한 의도는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처럼 국민 대통합을 위해서일 것이다. 국가발전을 위해선 이념·지역·계층·세대 간 갈등을 극복하는 게 절실하지만 이번 일에서 보듯 국민 대통합은 지난(至難)한 과제다. 박 후보가 국민 대통합을 이루려면 이벤트성 행사보다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