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우선주의’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에뜨로 수입업체 ‘듀오’ 이충희 대표

입력 2012-08-28 17:33


“‘나한테 돌려줄 필요 없다, 나중에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서울 청담동 백운빌딩에서 지난 24일 만난 명품 브랜드 수입업체 ㈜듀오 이충희(57) 대표이사는 이날 오전 대학생 55명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한 말을 들려줬다. 이 대표이사 자신도 대학 다닐 때 일곱 번이나 장학금을 받았고, 그래서 지금 가정형편이 어려운 후학들을 돕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선친이 윤리 교사였지만 형제가 여덟이나 되는 데다 어려운 이웃을 그냥 봐 넘기지 못하는 부모님들의 심성 덕분에 살림은 늘 쪼달렸다고. 이 대표이사는 여섯째다.

올챙이무늬로 유명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에뜨로’를 수입 판매하고 있는 그는 지난 2001년 백운장학회, 2002년 백운장학재단을 각각 설립한 이후 지금까지 750여명의 중·고·대학생에게 약 15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한 그는 개인적으로도 기부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술가를 후원하는 메세나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2009년 백운빌딩 5층을 갤러리로 꾸며 형편이 어려운 신진 미술가들의 전시를 돕고 있고, 올해부터 ‘에트로 미술 대상 공모전’도 마련했다.

“손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하는 일이니 크게 자랑할 것은 못됩니다.”

1979년 호텔 신라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해외명품 수입업체 유로통상을 거쳐 93년 단돈 800만원으로 ‘듀오’를 설립했다. 따라서 지금의 이익금 대부분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되돌려주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의 이런 마음가짐이 새삼 빛나는 것은 최근 외국 명품 업체들의 인색한 기부 행태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명품 업체들은 국내에서 급증한 매출과 순익의 대부분을 본국으로 가져가고, 기부는 ‘나 몰라라’ 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한해에만 4974억원어치를 판매한 루이비통이 지난 6년 동안 기부한 금액은 고작 3억1000만원. 에뜨로의 지난해 매출은 1000억원이지만 그해에만 5억원을 출자해 3억원으로 시작한 백운장학재단 기금을 30억원으로 늘렸다.

이 대표이사는 사업가들에게 돈보다 더 귀한 시간을 내놓는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 있는 군 장병들을 위한 특강에 나서고 있는 것.

“몇 해 전 아들이 군대 갔을 때 특강 강사를 했어요. 그 이후 요청이 들어오면 어디든 달려갑니다. 강사료가 적은 데다 오가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니 어쩝니까.”

강사료는 부대에 기부하고, 좋은 책을 잔뜩 싸갖고 가서 장병들에게 나눠 주고 온다. 이렇듯 남 돕는 일에는 주머니를 쉽게 여는 이 대표이지만 자신에게는 더 없는 ‘짠돌이’다. 일년에 두 번씩 가는 이탈리아 출장길에 그는 꼭 라면을 싸갖고 간다. 식사 약속이 없으면 호텔에서 라면을 손수 끓여먹는다. 40대 때까지는 비행기도 이코노미석을 이용했다. 사업가들이 즐겨 찾는 ‘룸살롱’ 대신 대여섯 명이 가도 10만원이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단골집을 찾는다. 휴가를 떠날 때도 먹을 것을 잔뜩 싣고 가고 잠은 모텔에서 잔다.

“가끔 사업상 골프를 치는데 예약이 어려울 때는 비싼 회원권을 사야지 했다가도, 돈이 생기면 장학기금에 넣게 되더라고요.”

기부가 우선인 그의 생활철학은 에뜨로 패션쇼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귀빈들에게 화환 대신 기부금을 줄 것을 안내하고 입구에 모금함을 놓아두곤 한다. 1998년 행사 때 축하 화환 하나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이탈리아 대사가 그 연유를 듣고는 감동, 본국에 상신해 문화 훈장 ‘꼬맹다토레’를 받기도 했다. 2011년에는 나눔 실천 유공자로 선정돼 국민포장도 받았다.

“기부도 중독인 것 같아요. 하면 할수록 더하고 싶어지는…. 하하”

그는 직원들도 나누는 기쁨을 알게 하기 위해 기부 문화에 동참시키고 있다. 2007년부터 임직원들에게 한달에 5000원씩 기부하도록 했다. 지금까지 불우시설에 ‘에뜨로 사원’ 이름으로 기부된 금액도 6500여만원이나 된다. 또 얼마 전에는 그를 오래도록 지켜 본 친구가 장학재단을 설립해 그를 기쁘게 했다.

기부 바이러스가 좀더 빨리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는 그는 “앞으로 10년 내에 장학재단기금을 10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고, 에뜨로 본사가 있는 백운빌딩도 장학재단에 기부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아들이 이 계획을 듣고는 “그럼 전요?” 하더란다. 이 대표이사는 “임대비 내고 써라. 그럼 쫓아내기야 하겠느냐”고 했단다.

“남매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재산의 10%씩 주고 80%는 사회에 환원할 생각입니다.”

이 대표이사는 “아들은 연매출 1조원대를 넘어서는 사업가가 되길 바라지만 그보다는 나눔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아버지로서의 바람을 밝혔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