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 빠진 전기차… 高價·기술 한계 극복이 과제

입력 2012-08-28 17:30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전기자동차 보급 확대에 제동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기자동차의 기술적 한계를 무시한 채 단기간에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욕심을 부렸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기차 관련 기술개발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전기자동차 뿐 아니라 ‘저탄소차 협력금제도’ 등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부의 친환경차 확대 정책을 점검했다.

◇전기자동차 수난시대=정부는 전기차를 2012년까지 4000대, 2020년까지 100만대를 보급해 20조원의 시장을 만들겠다고 2009년 11월 발표했다. ‘전기차 4대 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2년 7월말 현재 전국에 등록된 전기차 수는 600대에 불과하다. 그나마 전부가 대당 15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부 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 구입한 물량이다.

환경부는 올해 정부기관에 전기차 2500대를 보급하겠다고 지난 4월 발표했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전문가와 환경운동단체 사이에서 “환경부가 전기차에 너무 올인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기획재정부는 내년 전기차 보급사업 예산을 당초 계획보다 대폭 삭감해 100억 원을 책정했다. 이 예산으로는 대당 15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해 약 500대를 보급하는 데 그친다. 이는 당초 계획의 6분의 1 규모다. 환경부는 당초 내년부터 보조금을 대당 2000만 원으로 올리고, 지원대상도 총 3000대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서울시도 지난해 7월 전기차 3만여대를 2014년까지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6월 13일에는 당초 목표에 못 미치는 1만여 대를 도입하기로 수정 계획을 내놨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달 22일 이마저도 재검토를 지시했다.

◇전기자동차의 한계=내연기관이 없는 순수 전기차의 단점은 우선 1회 충전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가 짧다는 것이다. 최고 시속 60㎞ 이하의 저속전기차인 CT·T의 ‘이존’은 한번 충전후 30㎞를 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속전기차로서 공공기관에 보급되고 있는 기아차 레이EV와 르노삼성 SM3 ZE의 경우 한 번 충전으로 각각 최대 139㎞와 182㎞를 달릴 수 있다.

긴 충전시간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레이 EV를 급속충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5분, 완속충전에는 6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급속충전을 반복할 경우 배터리의 수명이 단축되기 때문에 하루 2회 이상 급속충전은 곤란하다.

또한 동일한 등급의 내연기관차에 비해 2∼3배가량 비싸다는 것도 큰 약점이다. 고가의 리튬이온배터리를 장착한 ‘이존’은 2200만원, AD모터스의 체인지는 2100만원에 판매됐다. 레이EV의 판매가격은 4500만원으로 휘발유 모델 레이(1335만∼1985만원)의 두 배가 넘는다.

전기자동차의 기술적 한계와 비싼 가격, 그리고 소비자들의 외면은 지금 세계적 현상이다. 자동차환경센터 조강래 소장은 “전기자동차는 현 단계에서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과제이지 단기적으로 승부를 낼 사안이 아니다”면서 “확실한 기술도 없이 형성되지도 않은 세계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식의 현 정부 정책은 수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메이커들의 책임감 부재=환경부는 올 들어 친환경차 정책의 보완책으로 CO2(이산화탄소) 배출량에 연계해서 차량을 살때 보조금을 주거나 부과금을 물리는 제도를 추진중이다. 우리나라 승용차 소비자들의 중·대형차 선호도가 지나쳐 승용차 대당 CO2 배출량이 높은 편이다. 따라서 CO2 배출량이 적은 차에는 인센티브를, 많은 차에는 페널티를 물리자는 것이다. 이런 취지의 ‘자동차 CO2 연동 보조금-부과금제도’는 최근 관계부처간 협의를 거쳐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로 명칭이 변경됐다.

실제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큰 차 선호경향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선진국들과 대조적이다. 2010년 국내 승용차 규모별 등록대수는 경차, 소형, 중형, 대형 비중이 각각 8.3%, 11.3%, 55.9%, 24.5%인 반면, 일본은 26.6%, 25.0%, 26.3%, 21.9%다. 프랑스는 39.0%, 35.0%, 11.0%, 15.0%, 이탈리아는 55.0%, 26.0%, 7.0%, 13.0%에 이른다.

그러나 중·대형차 선호를 꼭 우리나라 특유의 체면문화 때문만으로 볼 게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윤이 많이 남는 중·대형차에 비중을 두고 이윤이 적은 경차는 생산하지 않으려고 하는 등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해 소비자 선택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 시판중인 경차는 단 3종이지만, 일본의 경우 22종이나 된다. 국내판매 자동차의 ㎞당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0.5g으로 유럽의 153.5g에 비해 24.1% 많다. 박심수 고려대 교수는 “측정방식 차이를 고려하면 실제 차이는 40%에 이른다”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