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장애인 예술회관
입력 2012-08-28 18:12
석창우는 장애화가다. 전기엔지니어로 일하던 1984년 고압전류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다. 열 세 차례의 수술을 거쳐 의수(義手)를 달게 된 그는 어느 날, 아들의 부탁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삶의 전기를 맞는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서예와 크로키를 접목시킨 ‘수묵 크로키’를 만들어냈다. 지난 올림픽 기간 중 런던에서 스포츠 선수들의 동작을 크로키로 시연하기도 했다.
문은주는 지체장애 1급인 서양화가다. 몸은 불편하지만 작품 속에서 희망을 찾고,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그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개인전을 가질 만큼 활동이 왕성하지만 늘 아쉬운 게 하나 있다.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어요. 집에서 살림하면서 그리면 집중도가 떨어지고, 무엇보다 큰 작품을 하기에는 역부족이거든요.”
장애인에게 각광받는 장르가 초크아트(Chalk Art)다. 흑판보드에 파스텔을 사용해 일러스트나 글자를 넣는 상업미술이다. 장애인이 붓을 입에 물거나 발가락에 끼워 이 섬세한 작업을 수행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에 각광받는 이 칠판공예를 위해서도 적절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장애인예술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만의 작업공간이다. 최근 발간된 ‘장애인예술백서’의 내용도 그렇다. 방귀희 대통령 문화특보가 펴낸 책에는 5만 장애예술인들의 한결같은 꿈은 ‘장애인예술회관’이라고 했다. 휠체어도 돌리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해외는 어떨까. 미국은 장애예술인을 지원하는 VSA(Very Special Art)센터가 40개주에서 운영되고 있고, 해외 60곳에 진출해 있다. 영국은 장애인예술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비주얼아트센터가 있다. 일본은 1994년 장애인예술문화협회를 창립해 에이블아트운동을 전개한 이후 빅 아이 아트(Big I Art)와 하나(HANA) 센터가 장애인예술의 산실이 되고 있다.
장애인들은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 건물을 최적지로 꼽는다. 이 중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유인 서울 동숭동 예총회관은 상징성은 있지만 장애인들이 쓰기에 불편한 구조다. 그래서 접근성과 편의성이 뛰어난 상암동 문화콘텐츠센터를 희망한다.
문제는 예산이다. 2012년도에 책정된 장애인문화예술예산은 106억원이지만 순수예술활동에 쓸 수 있는 돈은 40억원에 불과하다. 장애인체육예산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예술회관을 갖고 싶은 그들의 꿈은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